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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깽르엉(Kaeng Lueang)
 
  깽르엉(Kaeng Lueang)  
     
   
 

 

하얀 그릇에 노르스름한 수프가 담겨 나온다. 걸죽한 국물 위로 고추기름이 살짝 떠오른 게 감칠맛나게 생겼다. 한술 떠서 입에 넣어 본다.

어라? 카레 향 속에서 한국에서 먹던 묵은 김치찌개 맛이 살짝 난다. 그런데 왜 자꾸 두피에 땀방울이 맺히는 걸까. 서둘러 밥을 한 숟갈 뜬다.

 맵다. 정말 맵다. 김치찌개가 울고 갈 정도로. 태국 남부식 카레 수프 요리이다.

‘깽’은 태국어로 국 또는 찌개,‘르엉’은 노랗다는 뜻이다. 노란 빛이 도는 이유는 카레의 원료인 강황가루 때문. 강황가루와 고추 등을 섞고 찧어 양념장을 만든 뒤,

 물을 풀고 농어 와 야채를 넣어 조리면 깽르엉이 완성된다. 맛은 매콤짭잘하기로 유명한 남부 요리 중에서도 단연 매운 축에 속 한다. 태국 사람 중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고 한다.

같은 카레 요리지만, 깽르엉의 맛은 또다른 태국식 노란 카레 수프인‘깽 까리 까이’(서양에선 yellow curry라고 부른다)와는 천양지차로 다르다.

깽 까리 까이는 코코넛 밀크를 넣어 만드는 치킨 카레 수프 요리로, 맛이 달달해 서 어린이나 외국인 입맛에 잘 맞다. 반면 깽르엉을 즐기려면 어느 정도‘연륜’ 이 필요하다.

깽르엉과 구별해야하는 또다른 음식은 깽쏨이다. 깽쏨은 태국 중부 지역 음식으로 생선과 새우 등을 넣어 끓이는 얼큰한 탕 요리이다. 맛은 깽르엉과 비슷한데,

강황가루를 넣지 않아 국물 빛이 불그스름하다. 재미난 점은 남부 쪽 사람들은 깽르엉을 깽쏨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애초 깽르엉이라는 말이 없었는데, 방콕 등 중부 지역 사람들이

요리를 서로 구별하려고 남부식 깽쏨에 깽르엉이라는 말을 붙였다고 한다. 깽르엉은 맛과 향이 무척 강해서, 일부 식당에서는 설탕이나 파인애플로 맛을 달짝지근하게 순화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남부 토박이 사람들은 이를‘타협’이라며 탐탁지 않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