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성장과 더딘 성장
한국은 1945년 민주주의 국가로 독립할 때까지 절대왕권 체재의 폐쇄적인 나라였다. 1950년부터 시작된 3년여 간의 전쟁은 모든 산업시설을 파괴했다. 전쟁이 끝난 1953년 직후엔 국가를 다스릴 정부 기관도 민주주의 자본개념도 신생아수준이었다. 국민 소득은 67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향하고 있고 내년에는 세계에서 7번째로 30-50 클럽 (5천만 이상의 국민으로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 나라)에 가입할 전망이다.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1960년부터 신생 자본주의 민주국가로 발돋움할 때 태국은 이미 국민소득 1,000달러가 넘는 국가였다. 특히 세계 쌀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하면서 제2차 대전 승전국으로 세계 정치와 경제에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50여 년간 양국의 경제 성장률은 대조적으로 그 폭이 달랐다. 최근에는 양국의 국민소득이 5배 이상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양국의 경제성장이 왜 그렇게 다른 것일까? 한국이 태국보다 빠른 성장을 보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계급사회 파괴와 존속의 차이
한국은 전쟁으로 여러 변화를 맞았다. 그 중에서도 계급사회의 파괴는 경제활동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한국의 5천년 역사는 1945년 자유주의 민주주의 국가로 독립할 때까지 왕족, 지배층과 피지배층 또는 양반, 중인, 상놈 등 여러 단계의 계급사회가 수천 년 반복되면서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는 다시 말해 가진 자는 계속 부를 유지하면서 권력을 세습하였고 없는 자와 피지배계급층은 대를 물려가며 계급사회 의식과 가치가 이어져 왔다.
그러나 1945년 독립, 1948년 민주주의 정부 수립, 남북 분단 등으로 숨가쁘게 시장경쟁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과정에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고 ‘완전하게 파괴된’ 경제 환경에서 ‘있던 자와 없던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가 “배고파 못살겠다”는 굶주림 앞에 선 것이었다. 이 점에선 서로 다를 바가 없었고 “잘 살아보자”는 노력은 모두의 절실한 현실로 변하였다. 계급 의식이 완벽하게 무너진 것이다. 누구든지 굶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자기 노력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회가 되었다.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절박한 현실에 계급은 의미를 잃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태국은 아유타야(Ayutthaya) 왕조에 이어 1782년부터 지금까지 절대적인 국민의 신임과 지지를 받는 짜끄리 왕조의 통치로 안정과 번영을 누려왔다. 부와 권력은 세습되었고 헌법에 의한 정치가 도입된 후의 정치적인 소용돌이도 계급지배 사회를 바꾸지는 못했다. 왕실에서 먼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도입하려고 시도하였고,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경제적 발전을 가속화 시키지는 못했다.
경쟁과 미래에 도전하라
1970년대부터 한국 기업들은 위험부담을 마다하고 세계시장 경쟁에 도전했다. 그런 가운데 많은 기업들이 도전을 포기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런 노력과 경험이 오히려 기업을 튼튼히 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 웬만한 한국의 중견 기업이라면 세계 시장에 도전하려고 한다. 기술과 경쟁력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이다.
태국은 대부분 매우 안정된 사업과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그 때문에 확대투자, 신규투자, 해외 진출 등에서 위험부담을 원치 않고 도전을 기피하는 것 같다. 태국의 R&D에 대한 투자는 GDP의 0.2% 불과하다. 한국은 3~4%에 이른다. 이를 봐도 개발과 도전이 미약하다는 얘기다. 현재 사업과 규모에 만족하고 있는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아세안경제공동체(AEC) 시대를 앞두고 많은 태국의 대기업들이 아세안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규모를 갖춘 몇 개 굴지의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안정 우선 방향의 정책을 추구하는 것 같다.
태국의 중산층 형성과 교육열
한국의 발전은 교육열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 부친도 부유한 농가의 유교적 봉건주의가 몸에 젖은 지배층 계급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그 뒤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보따리 장사를 하고 논밭을 경작하면서 자식들의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셨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던 1960년대 말부터는 어머니들의 지나친 교육열이 사회 문제가 되었지만 가난의 고통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생각에 모든 부모들은 자식교육에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었다.
태국도 국민소득이 5,000달러를 넘으면서 중산층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중산층은 스스로 노력하면 더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 지향적으로 잘 살아보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계층이다.
태국은 한국처럼 전쟁과 같은 큰 피해를 미친 외부적 동기가 없지만 현실에 도전하는 새로운 세대가 이미 사회에 진출했다고 볼 수 있다. 미래지향적인 중산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들의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도 10년 전과 비교해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2세 교육에 열정적인 요즘 태국의 부모들을 보면서 태국의 밝은 미래를 엿보게 된다.
The BRIDGES Columnist 박동빈 PHOTO K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