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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석의 못다한 이야기
 
  최영석의 못다한 이야기  
     
   
 


Coach Choi's Unfinished Story

그 '일'이 있은 뒤 한 달이 흘렀다. 모든 것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루 일과는 다시 땀의 얼룩으로 그려지고 있다. 최영석 태국 태권도 국가대표 감독을 다시 찾은 것은 8월 중순 오후. 여자 태권도 선수 ‘룽라위의 일’이 언제였었냐는 듯 방콕 태권도 전용 체육관은 선수들의 함성소리로 가득 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국 기자들이 문턱이 닳도록 몰려들던 곳이었다. 수많은 태국 매체가 그를 만나려고 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한국어 만큼 편하지 못한 태국어, 제한된 방송시간 등으로 미처 못한 말이 많을 것 같았다. 최감독과의 인터뷰는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자리를 옮겨 가며 계속됐다. 그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고, 때론 비장했다.

- 오늘 가르친 사람들은 태권도 사범들이라고 들었다.
태국 올림픽위원회에서 4년에 한번씩 전국의 사범들을 선발해 연수를 시켜주고 있다. 올해는 아시안게임과 연수기간이 겹쳐 일정을 앞당겼다. 일주일 내내 교육하는데 이론과 실기로 나눠 한다.  대회준비에 바쁘지만 태국어로 강의해야 하는 언어문제도 그렇고 지도자를 가르치는 일인 만큼 누가 대신할 처지가 아니어서 직접 하고 있다.

- 지도자로의 소신은 무엇인가?
지도자는 연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가 극중에서 캐릭터를 바꾸듯 지도자도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선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훈련이다. 훈련 때 더 많이 집중해야 하고 훈육도 더 많이 해야 한다. 하지만 경기 때는 훈련하듯 가벼운 마음을 갖도록 해줘야 한다. 세계대회에 나가 수많은 관중 앞에 서면 긴장하지 않는 선수가 없다. 이때는 부드럽게 해줘야 한다. 지도자는 때로는 무섭게 해야 하지만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행복할 땐 함께 웃고 힘들 땐 함께 울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

- 최 감독이 부드러운 면도 있단 말인가?
경기에 나가면 부드러운 편이다. 훈련할 때는 독하게 해도 경기 앞두고는 편하게 해주려고 한다.  10년 이상 나한테 태권도를 배운 제자들을 만나면 지금도 나를 어려워한다. 하지만 그들이 나의 무서운 모습만 봤다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태국어도 안되고 선수들의 습성과 문화도 몰랐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내가 가르치는 스타일이 다 맞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태국에 있으면서 내 자신을 많이 변형시켜왔다. 태권도가 한국에서 온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강요만 했다면 태국에 못 있었을 것이다. 훈련할 때는 물 한 모금 조차 허락 없이 못 마시게 하기도 했다. 선수가 미워서겠나? 그것은 1초라도 집중을 놓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다. 나와 오래 훈련한 선수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지금도 난 앉아서 선수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가르칠 때 화장실에 간 적도 없다. 내 스스로부터 집중하고 몰두하기 위함이다.  앉아서 장난치듯 가르치면 선수들에게 온전히 전달될 리 없다.  이런 내 진심을 선수들이 짧은 시간에 알 수는 없을 것이다. 

- 태권도를 배울 때 기억에 남는 스승이 있나?
풍생고교 때의 이경배 선생님이다. 혼자서 영어공부를 하는 것을 보고 외국에서의 지도자 길을 권유해준 분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밤낮으로 일을 하셔 인생조언을 해 줄 어른이 없었다. 선생님은 어떤 땐 악마처럼 무서웠지만 형처럼, 삼촌처럼 대해줬다. 그 모습에 제자들은 매료됐고, 더 믿고 따랐다. 나도 그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2002년 2월에 태국에 온 뒤 가장 어려웠을 때는?
맨 처음이었다. 주어진 기간이 6개월이었던데, 6년치 훈련을 다한 것 같다. 말이 안 통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몸으로 보여주는 수 밖에 없었다. 스물아홉 살에 독만 남았다.

- 대외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질 생각은 없나?
나는 지고 이기는 것에는 엄격하지 않다. 그러나 운동선수로의 기본은 중시한다. 이유 없이 늦는 것, 이유 없이 노력하지 않는 것, 집중하지 않는 것은 묵과하지 않는다.  한 명이 그런 모습을 보이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테크닉은 부족할 망정 그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바로 지적한다. 올림픽에서 메달도 중요하지만 태권도의 얼과 정신은 더 중요하다. 그런 자세를 가졌을 때 좋은 성적도 나오는 것이다.

- 이번 룽라위 선수와의 일로 느낀 점이 많을 것 같다.
정말 많이 느꼈다.  태국 선수들을 가르쳐오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2시간 동안 벌만 준 적도 있을 정도로 전에는 선수들을 더 혹독하게 훈육한 적도 있었다. 경기승패를 떠나 다른 선수들에게 좋지않은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한 의도였는데 그것이 훈육이었든 내 방식의 사랑 표현이든 먼저 목표가 동일하고 마음과 마음이 일치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후회하기도 했다. 내 훈육방식을 선수(룽라위)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꿈과 목표가 확실히 하기 위해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동안 내 자신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라고 생각해 왔다. 이번 일을 이젠 뒤도 좀 돌아보며 뛰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이번 일을 통해 그 동안 가르쳤던 제자들의 진실된 마음도 알게 됐다. 수많은 제자들이 인터넷에 편지를 쓴 것을 한글로 바꿔 보내준 것을 읽었다. 그것을 보면서 제자들이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알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많이 울었다. 

- 공항에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나왔다. 그때 심정은 어땠나?
놀랐고 부담스러웠다. 2년 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환영 나온 사람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손가락으로 V자도 그리고 했을 텐데. 이번엔 웃어야 하는 것인지, 울어야 하는 것인지,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인지 몰랐다. 감사하면서도 불편하기도 했다.

- 태권도를 시작하거나 훈련 중인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태국에선 태권도가 너무 경기적인 측면만 부각된 듯 하다. 태권도엔 심신수양을 포함한 무도 태권도 등도 있다.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면 부와 명예를 거머쥐며 인생역전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의 문은 너무나 좁다. 인생엔 공짜가 없고 환상만 가져선 꿈을 이룰 수 없다. 

-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최영석만의 트레이닝 비법이 있나?
우선은 정신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태권도는 멘탈 스포츠다. 기록경기가 아니다. 반드시 상대방이 있다.  선수들의 정신력을 강하게 하는 것은 관찰하는 데서 시작된다. 스포츠심리학을 공부했지만 한 달만 지켜보면 다 안다. 성격이 경기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소심한 선수는 격려해 주고, 외향적인 선수는 자제토록 한다. 코치들의 기술지도는 다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나는 선수의 장점이 80%라면 100%가 되게 끌어 올려준다. 단점은 보완할 수 있을 만큼 고쳐준다. 가령 방어가 안 되는 선수가 있다면 계속해서 발차기 공격을 해서 막게 한다. 선수들을 공평하게 대해주는 것은 중요하다.  못한다고 야단만 치면 절대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다.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지도자고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 장래성 있는 선수는 뭘 보면 알 수 있나?
눈빛이다. 이 선수는 올림픽감이구나 하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태국에 첫 은메달을 안긴 뷰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뷰보다 경험도 많고 잘하는 선수가 있었다. 그 선수와 겨루면 뷰는 번번이 졌다. 그러나 나는 뷰의 눈빛을 보고 3개월만 가르치면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그렇게 됐다. 하지만 막상 아시안게임이 가까워지자 협회에서는 반대했다. 난 책임을 지겠다고 했고 뷰는 결국 해냈다.

- 곧 아시안 게임이다. 어떤 성적을 기대하나?
총 11명이 선수가 출전한다. 지난 2010년에는 금 2, 은2, 동 4개 등 총 8명이 메달을 땄다. 이번에는 선수가 많이 교체됐다. 부담감이 있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 11명에게 모두 다른 목표가 있다. 9월 7일부터 17일까지 치앙마이 도이수텝을 뛰어오르는 체력훈련을 하고 9월 20일 한국으로 출발,  9월 30일 부터 경기가 열린다.  올 초부터 꾸준히 준비해 왔다.

- 태국도 종주국인 한국에서 경기가 열리는데 별도의 비책이 있다면?
지난 7월부터 태국도 룰이 많이 바뀌었다. 넘어지면 경고를 받는 경우가 많다. 넘어지지 않으면서 득점을 위주로 한 발차기 등을 훈련하고 있다. 한국팀을 만나면 우리가 이득을 본다. 내가 한국 코치가 선수에게 한국어로 하는 주문사항을 다 알아듣고 우리 선수에게 태국어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하하 

- 올림픽 금메달은 태국의 숙원이다. 특별한 계획을 세우고 있나?
우선 아시안게임부터 집중해야 한다. 스텝 바이 스텝이다. 이후 올핌픽 금메달에 내 인생을 걸 것이다. 전에는 선발전을 거쳐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이제는 국제대회에서 포인트를 획득해야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올림픽 팀을 구성할 것이다. 올림픽 팀을 구성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체급에 2-3명의 선수를 선발해 차근차근 준비할 것이다. 내년 러시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는 2년 뒤 열리는 올림픽의 전초전이 될 것이다.

- 태국 태권도가 더 점프하려면?
인프라가 더 확대되어야 한다. 대표선수가 아니라도 선수층이 넓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아시안게임 선수 선발전에서 메달리스트들이 줄줄이 떨어지거나 고전했다. 그만큼 선수층이 넓다는 뜻이다. 

- 아들이 태권도 선수를 한다면.
지금 다섯 살인데 곧 태권도 도장에 등록시켜 배우게 할 생각이다. 내가 국가대표 감독이지만 집에서는 컨트롤이 안 된다. 내 자식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다.

- 인생 좌우명이 있다면.
필요한 사람이 되자.

- 20년 뒤 모습은?
태국의 그랜드마스터가 되고 싶다. 그랜드마스터는 태권도 8,9단이 되어야 한다. 태국 태권도의 듬직한 존재가 되어 바른 길로 가도록 돕고 싶다. (최영석 감독은 현재 공인 7단, 8단은 44세가 넘어야 딸 수 있다)

- 태국과 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나?
12년을 태국 사람들과 살아왔다. 나는 태권도를 통해 태국 문화를 봤다. 태국은 최영석이란 이름을 알려줬고, 꿈을 심어줬고, 도전정신과 미래를 또한 안겨줬다. 태국인들은 나를 이끌어줬고, 끝없는 믿음을 갖고 따라줬다. 태국인들이 가슴으로 주는 사랑을 이번 일을 통해 더 크게 느꼈다. 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한번도 먹은 적이 없고,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태국 분들이 있을까 봐 속상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다 할 수는 없고, 어떤 말들은 안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인터뷰도 응하지 않았다. 태국이 나를 필요로 하는 그날까지 오로지 열심히 할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딸 것이다. 태국에서 한국과 한국인이 더 좋은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