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20년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일식당 열풍이 꺾였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방콕사무소가 1월 2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태국 내 일식당은 총 5,781개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2.2%(약 135개) 감소한 수치로, 조사가 시작된 2007년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 공식적인 하락세다. 업계에서는 수년간 이어진 확장 국면이 멈추고 시장이 ‘완전 성숙기’에 진입한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일식당 감소 현상은 방콕(-2% 이상)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 도시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방콕은 여전히 2,600개 이상의 매장이 밀집한 최대 시장이지만, 2020년 이후 일식당이 태국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더 이상 개척할 신규 시장이 남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업종별로는 명암이 갈렸다. 전체 일식당 중 일반 일식당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스시와 라멘 전문점이 그 뒤를 이었다. 주목할 점은 ‘라멘 전문점’과 ‘일본식 카페’만이 성장세를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카페 업종은 말차 트렌드와 일본식 디저트, 그리고 ‘인증샷’을 중시하는 소셜미디어 문화에 힘입어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반면 고단가 메뉴인 야키니쿠는 소비 심리 위축의 직격탄을 맞으며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시장의 양극화도 뚜렷해지고 있다. 수십 개의 분점을 보유한 대형 브랜드는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과 원가 절감을 통해 버티고 있는 반면, 개인 운영 식당이나 소규모 브랜드는 원재료비·인건비·임대료 상승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폐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재 태국 소비자들의 주된 외식 가격대는 1인당 4,848~24,000원(101~500바트)이며, 가장 많은 이용객이 몰리는 구간은 12,000원(250바트) 이하로 나타났다. 이는 소비자들이 화려함보다 실질적인 가성비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엔저가 불러온 외부 요인도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속적인 엔저 현상으로 태국인들의 일본 여행 문턱이 낮아진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태국 내에서 고가의 오마카세나 와규를 즐기기보다, 차라리 그 비용으로 일본 현지에서 오리지널 식재료와 경험을 소비하려는 ‘합리적 지연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JETRO는 향후 태국 내 일식당 시장에서 신규 개점과 폐업이 빈번하게 교차하는 치열한 생존 경쟁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단순히 ‘일본 음식’이라는 브랜드에 기대는 시대는 끝났으며, 명확한 타깃 설정과 전문화된 메뉴, 소비자에게 각인될 수 있는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갖춘 곳만이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태국 내 한식은 어떨까.
장기간 강세를 보이던 일본 음식이 주춤하는 사이, 한식(K-푸드)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태국 내 한식당은 단순한 식사 공간을 넘어 K-콘텐츠와 결합한 ‘문화 체험 공간’으로 진화하며 현지 MZ세대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콕 코트라 등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기준 방콕 내 주요 한식당 수는 전년 대비 약 20% 증가한 300여 개(주요 브랜드 및 정식 등록 업체 기준)로 집계됐다.
또 웹 스크래이핑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Rentech Digital은 2024년 3월 기준 태국 내 한식당(한국 식당) 수를 총 837개로 파악했다. 정확한 전국 통계는 없지만, 코로나 이전보다 2~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관련 조사 기관에 따르면 태국 현지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한식 메뉴는 한국식 치킨(30%)이며, 김치(27.7%), 비빔밥(27.2%)이 뒤를 이었다. 특히 과거 중장년층 중심의 고기 구이 위주 소비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한국식 브런치 카페와 디저트 전문점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태국 카시콘연구소(K-Research)는 2026년 태국 전체 외식 시장 성장률이 3.4%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한국계 외식 운영자들의 투자 성장률은 약 6%를 기록하며 시장 평균을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식당 성공의 핵심 요인으로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이 꼽힌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에서 화제가 되는 ‘인증샷’ 명소 여부가 매출과 직결되면서, 식당들은 인테리어와 플레이팅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여기에 OTT 플랫폼을 통해 노출된 한국 음식을 빠르게 메뉴화하는 기동성 역시 태국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는 평가다.
태국 내 한식 시장은 당분간 확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현지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한식 시장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진짜 한국의 맛’과 ‘현지화된 서비스’ 사이에서의 전략적 선택이 향후 생존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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