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북부의 러-이(Loei)주의 푸끄라두엉(Phu Kradueng) 국립공원의 등산로가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23일 다시 문을 열었다.
*푸끄라두엉 국립공원
이곳은 열흘전인 12월 11일 밤 등산로를 걷던 여성 관광객(49세)이 야생코끼리의 습격으로 사망한 후 폐쇄됐던 곳이었다. 푸끄라두엉 국립공원은 서늘한 기후와 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단풍이 있 관광지다.
푸끄라두엉 국립공원이 재오픈하면서 코끼리의 위험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태국 국회에서도 야생 코끼리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 가능한 접근법을 연구하고 있다.
태국 하원 위원회는 올해들어 특히 야생 코끼리에 의한 인명 피해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2024년 12월 15일 기준 코끼리로 인해 한해 동안 총 48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태국에서 야생 코끼리에 의한 사망자가 기록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로 분석됐다.
이에따라 농작물 등 재산 피해, 부상, 장애 또는 사망과 관련한 보상에 따른 법률 개정과 코끼리가 보호구역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장벽 설치 및 야생 코끼리 개체 수를 관리하기 위한 방법도 다시 더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태국 국립공원·야생동식물보호부는 지난 12년 동안 야생 코끼리로 인해 227명이 사망한 것으로 분석했다.
2024년 9월 30일 기준 태국의 야생 코끼리 개체 수는 약 4,013~4,422마리로 추정되며, 전국 94개의 보호구역, 16곳의 산림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2024년 코끼리 사건 사고 급증
그런 가운데 지난 4년전부터 꼬끼리에 의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야생 코끼리가 보호구역을 37,000회 이상 이탈했으며, 이로 인해 3,800건 이상의 재산 및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2012년부터 2024년 9월 까지 야생 코끼리에 의한 사망자는 227명 외에도 부상자가 203명에 달했다.
2024년에는 야생 코끼리가 보호구역을 11,468회 이탈하며, 1,975건의 피해를 일으켰다. 이중 농작물 피해가 1,610건, 재산 피해가 554건, 부상이 34건, 사망이 39건 발생으로 집계 됐다.
이는 2023년 같은 기간(부상 29건, 사망 22건)과 비교해도 크게 증가한 수치다. 피해자를 위한 보상금은 480만밧(한화 약 2억원)이 지급되었다.
태국인의 코끼리에 대한 감상, 코끼리 트래킹은 진귀한 라이딩
코끼리에 의한 피해가 늘고 있지만 코끼리에 대한 태국인의 감상은 특별하다.
매년 3월 13일을 국가 코끼리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으며 개체수가 해마다 감소하는 육상 최대의 동물 코끼리의 보호대책과 인간과의 공존 방법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야생코끼리는 4,000-4,400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 외에도 가축용 코끼리가 3,800-4,000 마리로 파악되고 있다. 결국 태국에는 현재 최대 8천400여 마리의 코끼리가 있다는 해석이다. 1900년에는 야생코끼리만 10만 마리 이상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순치된 코끼리 중 1천 여마리는 북부 산악지대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서 인간을 돕고 있고, 관광용 코끼리는 1천여마리 미만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코끼리 트래킹을 한다면 흔치 않는 ‘라이딩’인 셈이다.
태국은 `코끼리의 나라’로 불일 정도로 코끼리는 정겨움을 넘어 신성시되어 오기도 했다.
태국어로 동물을 세는 단위는 뚜어(마리)인데, 코끼리 만은 `츠억’이란 수량형용사를 붙여 특별대우 한다.
2014년엔 방콕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아유타야의 한 코끼리 캠프에선 프라이 크라오(Phlai Khlao)란 이름을 가진 수컷 코끼리가 사체로 발견된 적이 있었다.
강가를 걷다다 독이 든 바나나를 먹고 죽은 것으로 추정됐는데 프라이 크라오는 2004년 올리버스톤 감독이 만들고 한국에서도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알렉산더왕'에 출연했던 코끼리였다. 코끼리 한 마리의 죽음에 대해 태국 언론들은 어느 유명 인사의 죽음보다 크게 보도하고 주인은 승려를 불러 장사까지 지냈다.
떼죽음한 코끼리 가족에 대한 감정이입
2019년 10월 5일 이후 태국 다수의 언론들은 한동안 난리법썩을 떨었다.
방콕에서 3시간 거리인 카오야이 국립공원 해우나록(Haew Narok) 폭포에서 발생한 코끼리 집단 죽음에 대해 보도가 이어졌다.
공원 관계자가 이날 오후 3시쯤 폭포 위쪽에서 들려오는 코끼리의 큰 울부짖음을 듣고 6시쯤 도착해 보니 3세쯤 된 새끼 코끼리가 떨어져 사망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폭포 상단 절벽에는 두 마리의 코끼리가 탈진한 상태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150m 아래의 폭포 쪽으로 내려가 보니 새끼 코끼리 외에도 5마리의 코끼리가 더 숨져 있었다. 국립공원 관계자들은 미끄러져 폭포로 떨어진 새끼를 어른 코끼리들이 구하려다 추락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국립공원이 속한 나콘나욕주의 나타퐁 시라차나 주지사는 코끼리의 집단 떼죽음이 발견된 3일 뒤 기자회견까지 열어 6마리가 숨진 멀지 않은 장소에서 코끼리 사체 5구를 추가 발견해 폭포에서 떨어져 죽은 코끼리는 총 11마리라고 공식 발표했다.
공원측은 탈진 상태로 구조된 두마리의 코끼리도 가족을 잃은 슬픔 탓에 생존이 어려울 있다고 밝혔다.
카오야이 국립공원에는 야생 코끼리 30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데, 1992년에도 이곳 폭포에서 코끼리 8마리가 떨어져 숨진 적이 있었다. 코끼리들이 연신 떼죽음을 당하자 국립공원측은 폭포 상단에 울타리를 설치하고, 음식과 물을 제공해 코끼리들이 위험한 폭포 꼭대기로 접근하지 않도록 하는 ‘사후약방문’식의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코끼리는 가장 나이가 많고 덩치 큰 암컷이 무리를 이끌며 집단생활을 한다. 지능과 사회성이 높아 한번 가족에 속하면 평생 머문다. 2km 밖 다른 무리에서 내는 소리도 분간할 수 있고, 팀워크를 이뤄 외부 공격에 대한 방어망을 펼치기도 한다. 발을 굴러 위험신호를 전하고 동료가 다쳐 뒤처지거나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서 무리에 합류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특히 모성애가 강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무리에 속한 모든 암컷이 새끼를 함께 기르는 ‘공동육아’를 하며 자신이 낳은 새끼는 물론 다른 암컷이 낳은 새끼도 살피는 습성을 가졌다.
카오야이 폭포에서의 떼죽음이 단순 실족사의 연속인지, 특유의 가족애로 새끼를 서로 구하려다 줄지어 추락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명확하고 과학적인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코끼리 집안의 멸문지환(滅門之患)을 통해 세상에 더없이 귀중한 것은 가족뿐이라는 태국인들의 감정이입(感情移入)이 곳곳으로 전달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밥 많이 먹는’ 점보동물의 수난시대
‘귀한 대접’을 받은 코끼리도 2019년 말 시작돼 3년여간 이어진 코로나의 재앙을 버텨낼 수는 없었다.
특히 관광지에서 자전거 타고 공굴리며 관광객을 태구고 트래킹을 하던 코끼리들은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끝기면서 아사위기에 까지 내몰렸다.
몸무게 5톤에 몸길이 6m가 넘어 하루 평균 150kg 이상의 음식과 40리터의 물을 마시는 ‘밥 먹이 먹는 동물’이었던 탓이다.
관광지마다 코끼리 매각 공고를 잇달아 냈고, 임차됐을 법한 어떤 코끼리들은 500킬로를 걸어 고향으로 줄지어 돌아가는 슬픈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코로나 이전 코끼리가 활약하는 태국의 중소관광지는 70여곳이 넘었다.
코끼리 가족이 87마리나 되는 태국 북부 치앙마이의 자연공원에서도 연일 힘겨운 코끼리 생존과정어 보도됐다.
코끼리는 아무리 적어도 하루에 평균 500밧(한화 2만원) 정도 및 코끼리 인부의 임금이 들어가는데 이를 감당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코끼리의 1년 고정비용이 1억2천만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인간과 코끼리의 갈등으로 코끼리의 사망도 늘고 있다.
코끼리 사망의 72%는 전기 울타리 감전에 의해서다. 또 코끼리 부상의 57%는 자동차 사고. 전기 울타리는 사람들이 야생 코끼리의 습격을 방지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태국에선 외국산 코끼리 상아의 수입과 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코끼리 사육농가를 위해 국내의 상아는 거래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태국의 상아거래 허용 때문에 아프리카의 코끼리들이 밀렵의 대상이 돼 코끼리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비난을 받았다.
코끼리와 인간의 갈등, 음식 때문에 사람 공격하지 않는다?지난 2013년 할리우드 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태국 전 총리에게 상아거래 전면금지를 공식 촉구하는 일도 있었다.
디카프리오는 1998년 태국 남부 피피섬에서 촬영된 영화 `더 비치(The Beach)’로 유명해 졌다.
당시 피피섬의 마야베이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도중 디카프리오는 산호초 보호단체인 리프체크(Reef Check)에 관심을 보이고 지역 자연자원 보호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태국 동식물에 대한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코끼리와 인간의 갈등, 음식 때문에 사람 공격하지 않는다?
야생 코끼리의 서식공간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1961년 태국 산림은 27만 평방킬로미터였지만 50년 뒤인 2011년엔 17만 평발 킬로미터로 감소했다. 코끼리 한 마리가 충분한 먹이를 확보하려면 100 평방 킬로미터가 필요하고, 먹이를 찾아 하루에 6평방킬로미터를 이동한다고 한다.
산림이 감소하자 야생코끼리들은 사람의 농경지와 주거 공간으로 내려오기 시작했고, 이를 막기 위해 사람은 전기울타리를 설치하고 있는 것이다.
태국에서 코끼리의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은 차층사오, 찬타나부리, 쁘라친부리, 깐차나부리 등이고, 동부산림지대는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태국 정부가 국가차원에서 코끼리와의 해결책을 본견적으로 찾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이후다. 야생 코끼리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소금펜스 설치, 야생코끼리 먹이를 위한 작물 재배 등에 나섰다.
줄어드는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태국 북부엔 코끼리보호구역도 있고 람팡이란 곳에는 세계 최초의 코끼리 전문병원도 있다.
코끼리를 보호하고 공존하려는 노력이 전개되고 는 있지만 산업화에 따른 산림 감소 등 근본적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 한 요원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제는 야생 코끼리가 단지 음식만을 위해서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행동변화가 일고 있다는 우려섞인 분석도 제기된다.
외진 곳에서 코끼리를 만난다면?
코끼리 등에 타보면 2~3층 높이에 올라와 있는 기분이다.
60~70년의 수명이지만 임신기간 21개월에 한번에 한 마리 밖에 새끼를 낳지 않는다.
느릿느릿 굼뜬 듯 하지만 코끼리의 공격은 치명적이다. 100m 달리기 주파기록이 9.2초로 5톤의 몸무게가 덧보태지면 고속질주하는 자동차사고와 다를바 없다.
관광지에서 길들인 코끼리는 콧잔등 위에 아이들을 태워주고, 축구고 하고, 그림을 그리고, 때론 마사지하는 흉내도 내지만 경계심을 늦춰선 안된다.
흥분한 코끼리가 관광객을 등에서 떨구는 사고도 발생한다. 특히 산길에서 차를 몰다 야생 코끼리를 만나는 것은 더 이상 동화 속의 `코끼리 아저씨’를 만나는 일이 아니다. 실존 위험이 될 수도 있다. 이럴 때 전문가들은 행동요령을 다음처럼 권고하고 있다.
■코끼리로부터 최소 30m는 떨어져라.
■코끼리가 다가오면 조용히 천천히 차를 후진시켜라.
■절대 경적을 울리지 마라, 코끼리는 소리에 민감하다. 큰 소리가 코끼리를 흥분시킬 수 있다.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지 마라.
■자동차 엔진을 켜둬라. 하지만 가속페달은 밟지 마라, 코끼리는 낮고 은은한 엔진소리에 적응돼 있다. 소리가 나지 않으면 오히려 뭔가하고 다가올 수 있다.
■야간이라면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둬라, 코끼리의 움직임을 살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향 지시등은 켜지마라. 코끼리 호기심을 부추길 수 있다.
코끼리와의 공존법의 모색
현재 태국 코끼리는 한 해에 200마리씩 줄어들어 이런 상태로라면 머지않아 멸종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거주 공간이 줄어들면서 연간 700~800여 마리의 할일 없는 코끼리들은 도시로 내려와 배회하거나 구걸하다 교통사고를 일으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비수기인 우기철엔 도심을 배회하는 코끼리들이 더욱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이쯤 되자 일부 관계자들은 정부 당국에 코끼리 수출을 자유롭게 해달라는 요청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야생 코끼리 등은 상아를 얻으려는 밀렵꾼들로부터 여전히 죽임을 당하고 국경지역을 배회하다 지뢰를 밟아 불구가 되기도 한다.
국립공원의 사고와 폐장, 재개장을 계기로 태국내 코끼리와의 공존법이 더 활발하게 논의 될 수 있는지 주목된다. <By 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