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국왕의 둘째 부인 소생이지만 28년 전 어머니와 함께 해외로 추방되었던 와차라래손 위왓차라웡(Vacharaesorn Vivacharawongse.43)이 태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귀국, 한달살기에 들어갔다.
지난 3월 6일 태국여권을 받아 입국한 와차라래손은 4월 16일 끝나는 쏭끄란까지 한달이상 머물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첫 방문때는 10일간, 두번째인 지난해 12월 방문때는 14일을 태국에 머물며 언론의 집중 주목을 받았다.
이번 세번째 방문에는 태국 영문일간지 방콕포스트를 방문해 편집국에서 기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태국 여권을 받은 심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특별 인터뷰 했다.
*언론사 편집국을 찾아 기념 사진을 찍었다. (방콕 포스트)
첫번째는 개인자격으로 방문했고, 두번째는 경호팀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세번째는 태국 여권을 받은 뒤 주력 언론과 장문의 인터뷰를 하며 태국인들과 한번 더 가까워진 느낌을 주었다.
와차라래손은 지난 방문때 방콕 인근의 논타부리 지방청에서 태국 여권을 신청하고 통장을 개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콕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태국 신분증을 받아 공식적으로 태국인이 됐다. 20년 동안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태국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그냥 모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을 뿐이다. 개인자격으로 왔다. 누구도 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산도 없고 힘도 없다. 내 능력을 벗어나는 포부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뉴욕과 플로리다에서 에너지분야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데 태국으로 영구귀국하겠다는 계획을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정계 진출 계획에 대해서는 "정치는 무섭다, 전혀 뜻이 없다"고 밝혔다.
1981년 생으로 올해 43세인 와차라래손은 태국 국가원수인 현 와치라롱껀 국왕의 둘째 부인이 낳은 4남1녀 중 둘째다. 와치라롱껀 국왕은 모두 4번 결혼했는데 첫째부인과 이혼하고1994년 배우 출신인 수자린 위와차라웡과 결혼했다. 1962년 생인 수자린 전왕비는 작곡가이자 뮤지션의 딸로14세에 연예계에 데뷔, 바로 주연급으로 발탁돼 잘 나가던 배우였으나 활동 2년만에 은퇴를 선언했다.
1994년 푸미폰 전 국왕 내외의 축하속에 ‘뒤늦은’ 결혼식을 올렸지만 공식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공군 장성과의 간통혐의가 제기되며 이를 비난하는 벽보가 왕국에 붙는 끝에 파면돼 1996년 아이들과 함께 영국으로 추방당했다. 당시 와차라래손은 15세였다. 추방당시 9세였던 막내딸만 이후 태국으로 돌아와 왕실에서 자라며 왕실 직위를 되찾았다. 패션디자이너기도 한 그녀는 2014년 아시안게임에 태국 승마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자린 전왕비와 아이들은 영국을 거쳐 미국에서 줄곧 생활하며 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27년 만에 귀국한 와차라래손은 왕궁 앞에서 할아버지인 푸미폰 전국왕 초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불우어린이 시설 등을 방문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AP통신, BBC,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등 주요외신 들도 와차라래손의 행보를 속속 보도하며 관심을 이어갔는데 곳곳에서 몸을 낮춘 행보로 대체적으로 국민들로부터 ‘겸손하다’는 후한 평을 받았다.
와차라래손의 귀환이 유독 주목을 끄는 것은 태국 왕실의 후계구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
태국 왕실의 차기 왕위 계승자 중의 한명으로 거론됐던 팟차라끼타야파 공주는 2022년 12월 쓰러져 1년 4개월째 의식불명 상태다.
와치라롱껀 국왕은 4번 공식결혼해 모두 7명의 자녀가 있으며, 왕실경호대장 출신인 수티다 왕비와는 대관식 직전인 2019년 혼인했다. 의식 불명인 첫째 공주는 첫번째 부인 소생.
‘공식적’으로 태국 왕실은 후계자를 임명하지는 않았다.
1924년 제정된 태국 왕실법은 왕자가 후계자가 되는데 추밀원의 추천과 의회승인을 거쳐 왕세자 또는 명백한 후계자가 없을 경우 공주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
와차라래손은 ‘신분상’으로는 왕족이지만 막내 여동생과는 달리 공식적인 왕실 직함은 없다. 미국 Stetson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뉴욕 로펌에서 근무해 왔다.
태국 왕실이나 추밀원은 와차라래손의 귀환과 행보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떤 반응이나 논평을 내지는 않고 있다. <by 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