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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 야인이 된 태국 총리 ‘엉클 뚜’
 
  [공지] 야인이 된 태국 총리 ‘엉클 뚜’  
     
   
 

*손가락 신호를 보내며 총리로서 아듀를 고하는 쁘라윳 총리(Thai PBS)

국 쁘라윳 찬오차 총리가 야인이 됐다.

2023년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총리임기를 마친 것이다.

2014년 5월 22일 오후 4시30분을 기점으로 쿠데타를 선언(?)한 뒤 9년 3개월 동안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그는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權不十年)'을 확인시켜며 역사의 뒤편으로 비껴섰다.

총리로서 정부청사에서 보낸 마지막 날의 언행도 ‘괴짜 총리’ 스럽다.

동북부 음식인 쏨땀, 남똑무, 팟타이 등의 음식으로 일부각료, 출입기자들과 송별오찬을 한 그는 재임기간 동안 기자들에게 ‘욱한 것’에 대해 먼저 사과했다.

“폭발한 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옆에 있는 아누틴 보건부 장관에게 “이 분은 아무 문제가 없던 양반”이라고 하자 아누틴 장관은 “저는 부드러운 타입”이라고 했고, 쁘라윳 총리를 이 말을 되받아 “그럼 나는 어두운 타입이었다”고 응수했다.

*정부청사 앞 사원에서 예를 표하며 총리직 임무를 마감하는 쁘라윳 총리

임 기간 동안 그의 기행과 돌발발언은 수도없이 많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3월 9일 쁘라윳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개각과 관련된 불편한 질문을 받자 “당신들 일이나 잘하라”며 기자들에게 휴대용 소독제를 뿌려 세계적 화제가 됐다. 한국신문에는 ‘기자들이 바이러스’냐는 타이틀도 나왔다.

*기자들에게 소독제 뿌리는 쁘라윳 총리

는 임기 내내 기자들에게 퉁명스러웠다.

9년 3개월 간 권력의 정점에 있었으나 ‘쿠데타’의 원죄로 맘편한 날이 많지 않았을 터였을까?

선거로 선출된 잉락 전총리가 탄핵된 뒤 국정 공백이 이어지던 2014년 5월 22일이 그에겐 운명의 날이었다.

육군참모총장이던 쁘라윳 대장은 ‘난국수습을 위해 의논이나 한번 보자’며 주요 정치인들을 국방부 청사로 불러들여 감금한 뒤 몇시간 뒤 쿠데타를 ‘선언’했다.

질서유지하다 피한방울 흘리지 않은 ‘무혈 공짜’ 쿠데타였다.

*2014년 각군 참모총장들과 TV에 나와 쿠데타를 선언하는 당시 쁘라윳 육군대장.

하지만 이날 오후 9시부터 모든 TV 방송을 중단시키며 언론을 통제했고, 심야통행금지와 대학을 포함한 전면 휴교령을 내린 ‘초법적, 비민주적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쁘라윳 총리는 쿠데타 2년 뒤인 2016년 8월 정부청사에서 열린 한 시상식에서 부적절한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했음을 시인하며 로드맵에 따라 권좌에서 내려올 것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권력은 그 후로도 7년이나 더 이어졌다.

*퉁명스럽고 직선적이나 유머가 많은 편인 쁘라윳 총리

2019년 총선의 결과로 총리가 되었으나 4년 뒤인 지난 2023년 5.14 총선에서는 참패했다. 총리는 헌법상 8년 밖에 못한다는 규정으로 도마에 오르며 한달여간 총리직이 정지된 적도 있었다.

재임기간 동안 고십도 잇따랐다.

쿠데타 직후 지방순시 때 자신을 크게 인쇄한 홍보사진을 보고는 ‘국민 혈세’라며 치울 것을 지시했고, 2021년 4월 코로나때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호 접종자가 되기도 했다. 백신을 맞은 뒤엔 “머리까지 좋아진 것 같다”며 백신접종을 장려하는 해괴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 회의에 혼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가 때마침 발표된 마스크 착용 의무화조치 위반으로 벌금부과 1호대상자가 되기도 했다. 방콕시장이 정부 청사를 방문해 벌금 6천밧을 받아왔는데, 상상해 봐도 웃긴 장면이 그려진다.

총리인 자신의 순수 월급은 250만원이라고 공개한 적도 있다. 국민, 정치와 관련된 노래를 7개나 작사 작곡한 '예술가' 기질도 보였다.

*카오산에서 물총싸움 하는 모습

2023년 4월 쏭크란 때는 여행자의 거리 방콕 카오산에 꽃무늬 셔츠 차림으로 예고없이 나타나 물총싸움을 하다 비맞은 생쥐처럼 흠뻑 젖은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필자가 그의 재임기간 동안 직접 만나거나 지척거리에서 본 것도 여러번이다. 이때마다 언행이 가히 코미디언 이상수준임을 확인했다.

처음 만난 것은 쿠데타 발발 몇개월 후인 2014년 9월 18일 방콕 퀸시리킷 전시장이었다.

쁘라윳 총리는 태국 혁신& 디자인 엑스포 국제관에 당시 필자가 발행하던 한-태 바이링구얼 매거진 전시관을 방문했다.

K 팝그룹 엑소, 아시안게임 등의 표지를 관심있게 둘러보더니 ‘한국과 태국은 친구의 나라’라고 말했다.

정작 놀라운 것은 바로 뒤에 벌어졌다. 미디어관과 함께 한국 주방기구 전시관을 둘러보던 쁘라윳 총리는 “떨어져도 잘 깨지지 않는 특수유리로 만든 한국 유리그룻”이라는 설명을 듣자 마자 유리종지 하나를 집더니 땅바닥에 그대로 강하게 내동댕이 쳤다. 돌발행동에 깜짝 놀랐지만 그릇은 다행이 깨지지 않았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졌다.

*한국관을 둘러보며 즐거워 하는 쁘라윳 총리. 왼쪽은 홍지희 한태교류센터 KTCC 홍지희 대표

2015년 전세계에서 총 1천600업체가 참가한 태국음식박람회에서 한국관 조성을 맡은 적이 있는데 쁘라윳 총리가 한국음식 홍보관을 둘러보게 하려고 007 작전을 펼친 적도 있다.

한국에선 수산물, 임산물 및 각종 식품 및 음료 등이 선보였는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를 비롯한 각 전시관에선 한국요리 시연 등이 진행됐었다. 개막 첫날 한국관을 방문한 쁘라윳 총리는 당시 송미정 aT 방콕사무소 소장의 설명을 듣고 함박 웃음을 지었다.

*한국 음식관을 방문한 쁘라윳 총리가 한복이 아름답다며 말하고 있다. 오른쪽 두번째가 송미정 소장. 맨왼쪽은 KTCC 홍지희 대표

2018년 5월 한-태수교 60주념 기념으로 방콕에서 개최된 매경태국 포럼에 쁘라윳 총리가 기조연설자로 참가한 적이 있다. 태국에서 가장 잘한다는 동시 통역사 2명을 배치했는데, 원고와는 딴판인 그의 좌충우돌 발표에 통역사들이 시종일관 진땀을 뺐다.

1년 뒤인 2019년 9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태국 방문시 방콕의 한태 쇼케이스 전시장을 찾은 쁘라윳 총리는 한국 대통령과 뚝뚝이 전기차에 나란히 시승했다.

양국 정상의 뚝뚝이 전기차 동승을 위한 전시공간과 전기차 운영루트를 만드는 일을 맡았기에 잘 굴러갈까 마음을 졸이며 지켜봤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전기 툭툭이를 동승한 쁘라윳 총리

2020년 8월에는 태국 영문일간지 방콕 포스트 편집국장이 창간 74주년 포럼에 초청해 갔는데 쁘라윳 총리가 기조연설자로 왔다. 이미 총리 임기 6년차로 그의 발표는 쿠데타 이후 자신의 치적을 은근슬쩍 자랑하며 교육, 기후, 농업, IT 분야를 노련하게 넘나들며 종횡무진했다.

발표가 원고와 다르니 영어 신문을 만드는 회사의 영어 통역자들도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쁘라윳 총리는 이 때 연설에서 “태국에 와 있는 외교관들을 만나면 다들 태국 만한 나라가 없다는데, 왜 태국인들만 못살겠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농담을 했다. 통역사는 그의 이 말을 끝내 옮기지 않았다.

*포럼에서 즉석 연설해 통역사들의 진땀을 빼게 했다.

태국 일부 방송에서 쁘라윳 총리는 8월 31일 오전 9시9분에 마지막 총리활동을 했다고도 전했다.

숫자 ‘9’는 태국어로 ‘발전하다’라는 ‘까우나’와 발음이 같아 행운의 수로 여겨진다. 자신의 퇴임 뒤에도 태국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을까?

*정부청사를 떠나는 쁘라윳 총리

임 육군 참모총장이자 그가 총리직에 머무는 동안 든든한 지지자였던 아누퐁 파오친다 내무부 장관은 퇴임후 일본여행을 간다는 소식도 직접 전했다. 하지만 자신은 함께 갈 생각이 없다며 ‘아는 곳이 많지 않아 여행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총리직은 마쳤지만 몇가지는 집에서 계속 사인해야 할 것 같다며 앞으로는 누가 공격하든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총리로서의 점수는 법률적 제한 탓에 일부 프로젝트에서는 50-60% 밖에 하지 못했다며 몸을 낮췄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겠으며 아무특권이 없는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겠다’며 사랑을 뜻하는 손가락 수신호를 보내며 차에 오르는 그를 향해 그의 닉네임이기도 한 ‘엉클 뚜(뚜 아저씨)’의 외침이 이어졌다고 한다. 1954년 생으로 60세에 권력의 최정점에 오른 그는 몇개월 뒤인 내년 70세가 된다. <by 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