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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락과 그랜저
 
  도시락과 그랜저  
     
   
 

냉동실 문을 여니 얼린 도시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돌아보니 햇반에 볶음서리태, 비빔면도 한 박스다.

어디 놀러온 것처럼 RTE(Ready to Eat) 식품 천지다.

혼자 직장에 다니는 아들의 식생활 해결 수단인 것이었다.

 

어디가서 오이 김치 몇 개 가져온 아내는 남은 몇 개 집으려는 내 손등을 탁하고 쳤다.

아들 먹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 원 참.

나이 서른이 다되어도 자식은 자식.

집 밥 한번 제대로 못먹이고 혼자 벌떡 일어나 회사 다니는 아들이 안쓰러울 수밖에 없나 보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차를 살펴봤다.

우선 리모콘이 고장났다. 뒷문 한쪽도 밖에서는 열리지 않았다. 앞쪽 바퀴 휠커버도 없다.

후방 카메라도 블랙박스도 없다. 얼마전 옷깃 스칠 정도도 안되는 접촉이 있었는데 바가지를 썼다고 했다. 하얀차인데 아프칸 전쟁에라도 다녀온 듯 곳곳이 벗겨지고 까졌다. 

내부 청소는 10년간 한 흔적도 없었다. 

차는 1999년 식 그랜저 XG L 3천씨씨. 무려 23년이나 됐는데 주행거리는 겨우 6만8천km.

그때는 아주 좋은 고급차였는데, 지금은 거져 줘도 받을 사람이 없을 듯하다.

한 5년 전에 150만원 준다고 했으니 지금은 30만원이나 받을려나?

그런데 엔진도 쌩쌩하고 내부도 새 것이다. 카센터에서 놀란다. 어떻게 20년 넘게 이렇게 내부 관리를 잘했냐고.

태국에 있으니 내가 탈리는 없고, 주차장에 먼지 맞으며 서 있다가 배터리만 열몇번 갈았다.

고색창연한 초록색 번호판 차를 직장다니는 아들은 주말에 씩씩하게 끌고 다니며 퍽이나 정을 붙인 모양이다. 나는 ‘클래식한 차’라며 펌프질을 했다.

그런데 냉동 도시락 보고 마음이 안좋아, 회사 간 틈을 타 내부까지 손세차를 해주고, 리모콘도 샀고, 뒷문짝도 고쳤다. 너무 오래된 차라 부속이 없어 대부분 며칠 기다리거나 카센터 이곳저곳을 다녀야 했다.

블랙박스도 설치했다. 후방카메라 설치는 50만원 정도 들어 차값과 맞먹기도 했지만 기술적으로 도저히 달 수가 없다고도 했다.

걸리는 건 곳곳에 시커멓고 크게 난 자국이었다. 판금하는 곳에 가봤는데 불가능하다며 그냥 타라고 충고 했다. 그래서 부품 센터를 찾아 자동차의 일련번호까지 넣고, 그에 맞는 분사용 페인트를 샀다.

이게 큰 실수였다.

까진 부분만 살짝 뿌려야 했는데, 내 딴엔 말끔한 차 한번 만들어 주겠다고 욕심부려 곳곳을 맹렬히 분사하다가 차가 완전히 곰보 아수라백작이 되고 만 것이었다. 

하필 반쯤 뿌렸을 때 페인트가 떨어졌다. 이름하여 그랜저 그라피티!

퇴근해 차 모양을 보더니 얼룩덜룩한 페인트 칠을 한 차만큼이나 안색이 아주 안좋다.

헌차가 완벽한 똥차가 된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사람이나 차나 외모로만 보고 판단하는 아 황량한 세상이여! <by 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