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이 교통 범칙금 징수를 위한 체포영장 발부를 검토하고 있다.
오만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도 제대로 걷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2회 이상 내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데 태국 사법부는 ‘경우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2022년 7월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새 경찰법은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30일 이내 주소지로 통지서를 발부하고 15일 이내 납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교통법규 위반과 범칙금 미납으로 체포된다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과 상습 위반자가 야기하는 교통사고의 폐해가 크다는 경찰 측의 주장이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지금은 온라인 지로납부가 가능해졌지만 몇 년전까지만 해도 태국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면허증을 압수당하고, 다음날 이후 해당경찰서로 가 벌금을 납부해야 면허증을 되찾을 수 있었다. 교통범칙금 내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특히 먼 지방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해 면허증을 압수당하면 다시 지방을 방문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 범칙금 납부 고지서(일명 딱지)를 받는 대신 현장에서 뇌물을 건네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를 알고 있는 일부 경찰은 오히려 먼저 ‘은근한 거래’를 유혹하는 습성마저 있었다.
태국은 2016년 4월에야 교통법규 위반자가 범칙금을 은행과 편의점에서 전자이체 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어 1년 뒤인 2017년에는 교통 범칙금 납부방식을 더 다원화해했다. 범칙금 납부를 경찰서뿐만 아니라 은행, ATM, 인터넷 등으로 확대하고, 교통 스티커에는 위반 항목과 납부 방식도 선택하도록 했다. 위반사항은 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표기되도록 했다.
그러나 은행납부는 일부 은행에 국한되고, 인터넷 뱅킹이나 ATM을 이용하면 수수료 20밧을 추가해야 했다.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곧바로 범칙금을 내지 못하고 관련 사실이 시스템으로 이첩 될 때까지 이틀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것도 불편했다. 태국 경찰은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자 데이터 베이스를 토지운송국과 공유해 범칙금을 내지 않는 사람은 자동차세 지불을 일시적으로 유예토록하는 아이디를 내기도 했다. 자동차세 납부영수증이 없으면 또다른 벌금대상임은 물론이다. 톨게이트에서 이유없이 경찰에게 종종 멈춤을 당하는 차들이 그렇다.
태국에선 대부분의 교통법규 위반은 400밧 내외로 난폭운전, 차선위반, 불법유턴과 주정차, 번호판 미부착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차량 불법개조, 신호위반은 1천밧(한화 3만7천 원)이다. 납부 전산화가 실시됐지만 2016년 첫해 68만 건의 교통법규 위반 건 중 범칙금 납부는 11%에 불과했다. 법칙금 징수를 위해 별 아이디어를 강구해도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태국 경찰은 2019년 들어서는 다소 놀라운(?) 발표를 했다.
과거 교통범칙금을 징수하면 경찰이 나눠 갖도록 한 범칙금 제도의 개정계획을 예고한 것이었다.
태국 현행법은 교통 범칙금의 50%는 지방행정청에, 5%는 국고로 재무부에 보내도록 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나머지 45%는 경찰관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돼 왔다. 이에 따라 각 경찰서 중령급 이하 경찰들은 1인당 한달 최고 1만밧(한화 약 37만원)까지 교통범칙금을 보상으로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교통범칙금이 박봉인 경찰의 수익원’이라는 오랜 비난은 이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태국 경찰은 향후 이 시스템을 바꿔 1시간에 50밧(1,850원)씩, 일일 최고 4시간 이내로 초과수당을 지급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 초과수당도 결국은 교통범칙금으로 예산을 마련하는 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다.
한국의 교통범칙금은 국고로 귀속되어 교통안전 개선사업에 사용된다. 주차위반 등 과태료는 각 구청 등 지자체로 들어가 도로확충 등 교통개선 사업에 쓰인다. 경찰이 나눠 갖는 다는 것은 상상이 어렵다.
뇌물을 주고 범칙금 납부를 회피하는 것은 오히려 경찰관 때문이라도 조사도 나왔다. 태국 여론조사 기관인 에이벡이 방콕과 태국 11개주 운전사 22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경찰이 먼저 운전자에게 돈을 요구한 경우가 25%나 됐다. `경찰이 먼저 요구한 경우’가 25%라면, `운전자가 먼저 돈을 제시한 경우’는 더 많다는 결론이다.
돈 받는 경찰이 빈번히 문제로 지적되자 2014년 한 때 뇌물을 제공하려는 교통법규 위반자를 신고한 경찰관에게는 1만밧(한화 37만원)을 지급하는 포상제가 도입되기도 했다. 이어 교통법규를 위반한 뒤 100밧(3천700월)의 뇌물을 건네려던 오토바이 운전사 등을 신고한 두명의 경찰관에게 공고한대로 포상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예산부족으로 이 포상제도는 몇 명 주지 못하고 얼마가지 않아 흐지부지 됐다.
만가지 방법이 소용없자 교통범칙금 캠페인도 도입된 적이 있다. 방콕 중심가를 관할하는 타루아 경찰서에서는 2017년부터 수개월 동안 `법규 위반자 테스트 후 벌금 할인 제도’를 실시했다. 면허증을 소지하지 않거나, 오토바이 운전자가 헬멧을 쓰지 않을 경우, 운전 중 휴대폰 사용, 안전벨트 미착용자 등 법칙금 1000 밧 미만의 4가지 경미한 교통법규 위반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보게 해 80점 이상을 맞으면 100 밧으로 할인해 주는 제도였다.
객관식 30문제 중 24 문제를 맞추면 되는데 불법주차나, 음주 운전 등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교통문제를 일으킨 위반자는 제외됐다. 캠페인 목적은 교통법규 위반 재발 방지와 범칙금 징수증가를 위해서인데, 두 가지에 어느정도는 효과가 있었다. 시험을 보면 깎아준다는 말에 응시자도 늘고, 범칙금 징수도 꽤 증가했다. 특히 경찰서에 범칙금을 내러 온 사람들의 90%는 시험을 치렀다. 다만 애석하게도(?) 합격자는 50% 선에 그쳤다.
돈 받는 경찰이 있다고 이를 일반화해 비난할 수는 없다. 경찰 대다수가 본분을 다하고 사명감도 높다. 경찰의 내부 비리를 파헤치고 공정한 법집행에 나서는 에누리없는 경찰들이 많다. 총격으로 2009년 사망한 칫 통칫이라는 54세의 경찰관은 태국의 투명성을 높인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시 그의 가족들은 보름 넘게 시신을 화장하지 않았는데 범인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억울해서 장례를 지낼 수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칫 통칫은 정치인, 심지어 경찰관에게도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비리 정치인을 조사해서 법정에 세웠고, 교통경찰관으로 근무하던 때는 경찰들이 화물차 트럭으로부터 어떻게 뇌물을 받는지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가 경찰, 또는 정치인의 비리와 관련해 싸운 굵직한 케이스만 해도 10건이 넘는다. 이중 4건이 그의 사망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범죄소탕국의 부사령관은 밝혔다.
칫 통칫은 경찰 초기시절 담배 밀수와 연루된 경찰 상급자를 체포함으로써 정직한 경찰이란 평판을 얻기 시작했다. 그 이후 교통경찰관들의 비리를 거듭 밝혀낸 뒤 여러 번 보직 변경되기도 했다. 여러 차례 암살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그의 농장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지고 말았다. 장성한 변호사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난 그는 죽었을 망정 언젠가 태국 사회에서 다시 조명받을 날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고위직을 검문한 경찰에게도 네티즌들의 응원이 잇따랐다. 검문 중 지역 법원장에게 면허증 제시를 요구했다가 내근부서로 보직이 바뀐 순경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급기야 쁘라윳 총리마저 나서 “경찰관은 옳은 일을 했다”며 근무 원상복귀를 지시했고, 경찰청장이 나서 직접 수사 지시를 했다. 태국 사법위원회도 고위판사들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윈회를 꾸렸다.
나콘시탐마랏 주 산하의 텅야이 경찰서에 근무하는 에카폰이라는 순경이었다. SNS에 공개된 2분짜리 동영상에는 에카폰 순경이 “검문중이다. 면허증을 제시해 달라”며 중년의 남성 운전자에게 요구했다. 운전자는 팔짱을 낀 채로 “면허증을 보고 싶나? 나는 이 지역 판사다. 경찰서장 촉디의 친구란 말이다. 내 친구에게 전화해 보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내 다른 경찰관이 “가도 된다”고 하자 “됐나? 가도되나?”라고 물은 뒤 자신을 검문한 에카폰 순경의 이름을 묻는 장면이 나온다.
운전자는 실제 형사법원 판사로 검문을 받은 뒤 해당지역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컴플레인을 했다. 에카폰 순경의 보직변경 사유는 ‘부적절한 톤으로 검문했다’였다. 동영상이 확산되자 네티즌들은 법원장의 친구인 경찰서장 ‘촉’의 이름을 스키터로 만들어 ‘나는 촉의 친구’라는 문구를 승용차에 붙이며 고위직의 권위주의 행태를 맹렬히 비꼬았다.
태국 고속도로 순찰대는 한동안 `스마일 마스크' 착용 운동으로 화제가 됐다.
`스마일 마스크'는 태국의 정치 불안 등으로 사회가 양분되며 국민들이
화낼 일이 많자 미소를 되찾자는 취지에서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은 이런 마스크로 가능한 게 아니다.
어떤 압력도 받지 않는 공평무사하고 정직한 법의 집행, 친절한 시민봉사 정신에 있다. 경찰의 비리를 파헤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경찰관과 검문한 순경의 요구에 따르고 순응하는 고위층이 많아질 때 ‘미소의 나라’ 태국의 웃음이 더욱 빛날 것이다. <by 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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