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하기 이른데 없는 사기사건인데 발행부수 1, 2위를 다투는 태국어 일간지를 비롯해 방송 등도 일제히 보도했다. 검거경위와 함께 경찰이 배포한 듯한 사진이 전해졌는데 사기 혐의자의 나이, 실명과 얼굴은 물론이고, 경찰, 피해자까지 죄다 한 앵글에 담겨 기념촬영(?)을 한 것이었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겨 제법 포스있게까지 보이는 무표정한 혐의자 앞에는 여행가방, 이동용 강아집 등 피해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아져 있었다. 압권은 피해자들이 일제히 혐의자를 가리키며 `이 사람입니다’란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사진기자나 경찰이 `하나 둘 셋‘하는 신호를 줬기 때문에 동시에 이런 모습이 나왔을 것 같은데 약속이나 한 듯 왼손가락으로 혐의자를 가리키고 있다. 태국인들은 전통 화장실에서 일을 마친 뒤 왼손을 사용하기 때문에 왼손을 불결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보도관행은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한다. 물론 범죄용의자의 얼굴공개는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에서는 반사회적 흉악 범죄 용의자의 경우 얼굴을 공개하기도 하지만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 신변보호를 받는다. 태국은 흡연이나 술마시는 장면은 브라인드 처리해도 사고나 범죄현장의 끔찍한 모습은 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혐의자가 머리조차 숙이지 않는데다 피해자들과 범인을 검거해 공적이 있는 경찰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 모습은 태국에서만 만나게 되는 `타이스타일’ 가운데 하나이다.
택시기사의 사기수법은 단순 유치 그 자체였다. 손님이 택시에 타면 연료가 떨어졌으니 길가로 차를 빼게 밀어달라고 부탁했다. 착한 승객이 도와주려고 내리면 그대로 줄행랑을 치는 수법이었다.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자 관할경찰은 몽타주를 만들어 배포하고 오렌지색 택시를 모는 혐의자를 추적해 CCTV 등도 확보했지만 번번이 검거에 실패했다. 단서를 잡은 것은 택시기사가 휴대폰을 되팔려고 휴대폰 중고매장에 전화를 건 것을 추적한 결과였다. 혐의자 남성의 집을 덮치자 수백여 가지의 귀중품이 쏟아져 나왔는데 심지어 4개월 된 애완견도 발견됐다. 남성은 범죄사실을 순순히 시인했다.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제 전환 이후 총 19번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SNS가 활발한 2014년에도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기자들과 실세군인들 사이에서는 쿠데타에 앞선 2-3년전부터FAQ(빈번한 질문과 대답)가 이어졌다. 기자들이 군서열 3위지만 실세인 육군참모총장에게 ‘쿠데타 일으킬 것이냐?’고 묻고 육군참모총장은 그 때마다 ‘그럴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은밀하고 기습적인 쿠데타’가 공론의 장에 오른 것이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쁘라윳 총리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3월 기자들에 대한 돌발행동으로 해외토픽이 됐다. 출입기자 회견에서 불편해하던 개각관련 질문을 받자 ‘당신들 일이나 잘 하라’며 기자들이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가 마스크로 자신의 입을 막은 뒤 휴대용 소독제를 지속해서 분사한 것이었다. 한국의 한 언론은 ‘기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란 제목을 뽑아 보도하기도 했다.
태국 기자님들은 속보가 우선일까 정확도가 우선일까? 정답은 둘다 아니다. 한국언론들이 언제부터 뽐내며 쓰는 ‘단독’이란 제목은 거의 붙이지 않는다. 오보도 잦고, 일부 미디어 외에는 정정보도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
2016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인터뷰 기사가 7월 25일자 신문에 전면에 걸쳐 보도된 적이 있다. 신문은 박시장이 과거 방문했던 태국 북부에서 자연을 벗삼아 등산하고 싶어한다고 시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정상에 오르려는 등산과 연결시키며 수미상관(首尾相關)으로 멋지게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가장 잘 보이는 프로필에는 1956년생인 나이를 9세나 적은 1965년생으로 오기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한자리에서 같이 듣고 엉뚱하게 다르게 쓰는 ‘넋 나간’ 기자들도 부지기수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 3월부터 국가봉쇄가 실시된 후 2년 6개월간 보건부 대변인이 발표한 수많은 공식 브리핑이 이어졌는데 제각각 보도가 이를 증명한다. 특히 외국인의 입국방침에 대한 오보가 가장 많았고, 영자신문들을 많이 참조하는 외신들의 줄이은 오보사태로도 이어졌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애타는 관광청의 정정요구에도 일부 신문은 꿈쩍도 안하는 ‘똥고집’을 보이기도 했다. 쿠데타도 공개적으로 묻는 태국 기자들은 사내에서도 할말은 다 하는 모양이다. 주 1회 6페이지가량의 섹션부록을 담당하던 일간지 중견기자는 함께 일하던 후배 기자 1명이 타사로 이직해 일이 늘어나자 2-3주도 못 참고 급여를 올려달라고 공식제기했다고 했다.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탓인지 바로 타 신문에서 일하고 있다.
태국 기자들은 사회문제가 복잡해지면 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2021년 3월 젊은이들 위주의 반정부시위가 고조되며 긴장감이 조성되자 언론위원회, 언론인연합회, 방송기자 연합회 등 6개 언론기구는 정부는 물론 시위 단체에도 동시에 자제 촉구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언론인은 객관적 시각을 갖도록 훈련받는다지만 태국 기자님들은 흥분부터하고 가장 먼저 나서기도 한다. 한류 스타의 태국 방문때는 취재를 겸한 기자 팬클럽이 수두룩하다. 한류 취재로 한국에 왔던 TV 여기자는 광팬인 송승헌을 만나자 마이크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어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한국에도 정우성을 인터뷰하다 커피잔을 쏟은 여기자도 있다) 즐길 줄 아는 기자들이요, 애써 감정을 숨기지 않는 모습의 예다. 기자들의 복지나 급여수준은 높지 않다. 중요행사에는 홍보사들이 언론홍보를 맡는데 TV와 중앙언론사 몇 개사를 초청하느냐에 따라 견적이 달라진다. 흥미로운 것은 홍보사들이 몇 개 이상 중앙언론에 반드시 나간다는 ‘불가사의’한 확정계약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액수도 비싸다. 태국 신문은 ‘기사성 광고’가 일반화되어 있다.
디지털 세상은 기자들의 일터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유력 언론사들의 종이신문들이 잇달아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방콕포스트와 함께 태국 양대 영문일간지인 더 네이션 지는 2019년 6월 48년의 지령 역사를 마감해 충격을 주었다. 더 네이션 쏨차이 사장은 "독자층의 소셜미디어로의 이동으로 광고수입이 줄어들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고 말했다. 더 네이션은 튀는 편집으로 태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소식을 다뤘으며 한국 세월호 침몰사고 때는 더 네이션 TV와 함께 '희생자 추도' 방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프라인 독자 수가 급감하며 연 11억원(3천만밧)의 적자가 5년간 이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