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어로 ‘매반’은 가정주부를 뜻한다.
아침 출근길에 매반이 아내에게 달려와 뭔 말을 하더니 펑펑 울고 있었다.
‘사과’라는 뜻의 ‘쁠’이란 닉네임을 가진 이 매반은 3년째 일하고 있다.
주 5일 근무고, 법정 휴일은 꼭 쉬고, 아침 8시쯤 왔다가 4시 좀 넘어 돌아간다.
이런 근무형태인 태국 매반들의 평균 급여는 50만 몇 원대이다.
쁠은 일정한 직장이 없는 남편과 어린 남매가 있다. 아버지가 아프다며 일찍 가거나 안 오는 날도 부쩍 잦아졌다. 몇 주 전부터는 5-6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를 데리고 출근한다.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파 같은데 이부자리를 깔아주는데 이 녀석은 작은 게임기를 들여다보며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쫑알댄다.
태국인들은 회사에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가 잦다. 집 수리한다며, 부모가 아프다며 여러 이유가 있다. 우리 회사도 1년만 되면 자신이 받는 급여수준만큼 무이자 대출을 해주고, 근속연수에 따라 대출금을 올려 빌려준다.
늘 돈이 없는 것은 한국인이나 태국인이나 월급쟁이 공통 현상이다.
‘코로나’ 가운데 회사에 대출을 하고 있는 직원이 꽤 된다.
쁠도 여러 차례 돈을 빌렸다.
최근에도 아버지 병원비가 필요하다며 급여수준만큼 회삿돈을 빌려 갔다.
그런데 최근 회사 회계 담당이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쁠이 회사 대출금을 한꺼번에 모두 갚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전 회계 담당은 퇴사한 상황.
쁠은 현금을 건넨 날짜와 장소 시간까지 매우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회사 장부에는 물론 대출금 회수 근거가 남아있지 않았다. 퇴사한 회계 직원은 돈 받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진실공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불러 대질하면 한 사람은 돈을 건넸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 주장을 되풀이할 것이다. ‘정치인 뇌물수수’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게 뻔한 노릇.
나는 매반 쁠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단번에 확신했다. 다른 직원들의 대출과 관련된 회계 처리가 정확했고 그동안 이와 유사한 사례도 있었음을 기억했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이 문제를 파헤치거나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는 쁠의 아버지가 몸이 안 좋다니 돈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했다. 나도 이 일이 발생 이후 보름여 동안 평소와 똑같이 대하려고 노력했다.
긴 휴일을 마친 오늘 아침에 ‘쁠’은 어김없이 아들을 데리고 출근해 그릇을 씻고 있었다.
아내가 그녀의 어린 아들에게 다가가 [잘 지냈니? ]하고 말을 붙이는 순간 쁠이 울음을 터뜨렸다.
[돈이 아쉬워 거짓말을 하다 보니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죄송하다]며 뭐라 뭐라 아내와 태국어로 긴 대화를 이어가며 이실직고했다. 급여에서 한 달에 3만-4만 원씩 삭감해 달라고도 말했다.
나는 그녀의 제안대로 대출금만큼 급여를 삭감할 것이다. 잘못을 고백한 용기를 높이 사 하지 않던 여러 것을 맡길 마음도 없다.
태국에서 ‘별의별’ 일을 다 겪고 사는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맷집’ 하나뿐이다. 공연히 상상하다 들끓고, 분노하고 증오하는 마음 만은 거두며 살고 싶다. 나이 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