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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을 만드는 이유, 빵이 주는 행복
 
  빵을 만드는 이유, 빵이 주는 행복  
     
   
 

#낚시가 너무 좋은 시절이 있었다.

책과 잡지를 찾아보며 ‘낚시는 과학’이라고 생각했다.

달빛 받으며 유유히 올라와 드러눕는 찌를 보는 황홀감이란.

웅크리고 앉아 새벽 안개를 맞는 기분은 알싸하고도 매력적이다.

넋 놓고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지만 낚시는 아주 바쁘다. 찌의 움직임에 집중해야 한다. 밤을 꼴딱 세워도 졸 틈이 어디 있나? 찌의 움직임에 이은 챔질로 이어지는 찰나의 순간에 어종을 예상하는 스릴은 절정이다.

탤런트 전광렬씨도 내가 가는 낚시터에 자주왔는데, '허준'이 뜨더니 낚시도 안온다고 주인이 자주 푸념했다.

 

#골프를 치면서 낚시가 뜸해졌다.

일단 손에서 낚시처럼 ‘꼬리꼬리 한’ 어분 냄새가 안 난다. 낚시할 때 입는 후줄근한 운동복이나 점퍼 대신 멋진 벨트와 모자, 알록달록한 옷으로 멋을 낸다. 낚시처럼 밤새운 뒤의 뭔가 찌부둥한 기분도 없다. 잘 치기 시작하면 천장에서 골프공이 뱅뱅 돈다. 100에서 90으로 줄어들고 핸디가 열 서넛 쯤 되면 어지간한 모임에선 승자가 돼 늘 기분 삼삼한 상태로 집에 온다. 손바닥이 너덜너덜해도 연습한 만큼 결실이 나온다. 수많은 대회와, TV, 칼럼,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에 골프 화제는 쉼 없이 이어진다. 세상엔 골프를 치는 사람과 안 치는 사람의 두 종류가 있다는 어느 한 인사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골프장이 멀어졌다.

주말마다 자뻑에 빠져 혼자 치던 골프보단 사진은 바람처럼 홱 지나가는 세월과 가족의 여러 모습까지 기록할 수 있다. 돌아보면 사진만 남는다. 사진 없는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앵글에 담고 싶은 멋진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날이 많았다. 작고, 크고, 무겁고, 가볍고 여러 종류의 카메라가 늘어났고 휴대폰에 각종 편집 어플이 깔렸다. 언제 어디서든 DSLR를 들고 다녔는데, 어떤 사람은 행사장에서 ‘사장이 가오 떨어지니 카메라는 직원들에게 맡기라’는 핀잔을 준 적도 있다. 그래도 지금도 셔터 소리가 좋다.

 

#빵을 만드니 카메라가 골방에 처박혔다.

태국에 휴가 온 아들과 함께 시간 보낼 생각으로 빵 책을 구입했다. 공부할수록 흥미로운 세계였다.

태국 오는 사람들이 옛날에는 담배나 양주를 선물로 주더니 빵책을 사다 줬다. 궁금하면 카톡으로 즉시 물어볼 수 있는 빵 전문가들도 주변에 생겼다. ‘빵 만들기’는 낚시와 골프, 사진의 모든 장점을 아우르고 있었다.

챔질 순간 어종을 예상하는 낚시의 스릴은 빵 반죽 뒤의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것과 닮았다. ‘낚시는 과학’이지만 빵은 ‘계량, 온도, 습도, 손의 감각’이 함께 어우러지는 디테일의 과학이자 종합 엔터테인먼트다. 둥글리기를 하며 모양과 맛에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찾아온다.

좀 맛을 내기 시작하면 주변의 반응에 우쭐해진다. 골프와 닮았다. 아무리 빵맛이 엉터리라도 예의상으로 ‘괜찮다’고 말해주지 혹평하는 사람은 없다. 세상과 직장 생활도 이렇게 칭찬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거늘.

 

#빵으로 ‘뉴딜정책’을 하고 있다.

코로나로 일거리가 줄어든 회사의 여럿 태국 운전기사들을 위해 목, 금 빵 만드는 것을 도우면 일당을 준다. 만든 빵은 주변에 무료로 나눠준다. 반응이 좋으면 팔아도 봐야겠단 속내를 내심 갖고는 있었지만 이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게 우선. 나눔 빵은 외피에 한글 자모가 새겨진다. 나눔 빵 또 한가지는 한국에서 가장 핫해 줄 서서 먹는 마늘 치즈빵. 작년 강원도 태국 드라마 촬영 때 수백 미터 줄 선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

한글 빵은 태국인 대상 여러 차례의 실험을 거쳐 레시피를 완성했다. 3주간 빵 나누기를 했는데 반응이 좋다. 시식이 아니라 사서 많이 자주 먹고 싶다는 연락도 온다. 회사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가 빵 가격을 정하고 페이스북에 올리자 수백 개의 대량 주문까지 들어왔다. 회사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사람도 빵 나오는 금요일 오후 시간에 맞춰 오기도 한다.

한글 빵의 외피와 속은 찹쌀을 포함한 18가지 정도의 재료로 만드는데 오렌지색 고구마를 시장에서 자주 사다 보니 매주 신선한 고구마를 공급해 주겠다는 태국인도 생겼다.

오늘 금요일도 300여 개의 빵을 만들고, 12시부터 빵 나누기를 했다. 사고 싶다는 사람에겐 2개를 사면 4개를 주고 시식도 실컷 하게 했다. 막 퍼준 후한 거래(?) 이기는 했어도 1시간도 안 돼 100개를 팔고 200개를 나눠줬다. 배달료를 미리 부쳐온 사람도 있다고 했다. 반죽 과정에서 맘에 들지 않게 나온 ‘모닝 빵’ 100여 개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컷 가져갈 만큼 가져가도록 했다. 의문이 있는 것에 대해 카톡으로 물어보자 한국의 빵 전문가가 바로 대답해 줬다.

 

#빵을 만드는 행복

결과 예상이 흥미롭고, 주변을 행복하게 해주는 빵. 버릴 것이 없는 경제 행위다.

코로나로 여행도 못 가는데 유럽, 중동, 미국, 프랑스 세계 곳곳을 뒤져가며 빵의 역사를 탐험하는 지적 호기심과 실천이 바로 가능하다. 손가락, 허리 모두 끊어질 것 같은데 타인과 아규하거나 관심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빵빵하고 아름다운 색깔로 부풀어 오른 빵을 보면 평생 배부를 것 같고 풍요로운 마음이다.

빵 보조를 시켜보니 사람 됨됨이도 금세 알 수 있다. 운전기사 및 매반 아줌마 한 명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책 읽고 유튜브로 장기 학습한 노하우를 메모하며 금세 배운다. 누군가는 ‘직업훈련소’ 같다고 하는데, 이들이 잘 배워 독립해서 한글이 찍힌 빵을 태국 곳곳에 퍼뜨리면 세종대왕께 칭찬받을 보람된 일이 아닌가?

엉뚱한 꿈과 상상력까지 주는 빵, 그러니 낚시와 골프에 비할 게 아니다. 내 친애하는 그대여 ! 한 두 주 만이라도 골프클럽 넣어두고 앞치마 두루고 빵 반죽 앞에 서보시라!<by 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