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에 오라윳은 왜 거기에 있었을까? 통로는 호화로운 멤버십 술집과 고급 유흥업소가 많은 곳이다. 경찰이 공개한 사고 사진을 보면 오라윳의 페라리는 앞부분이 전파되어 있다. 통로 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이 차에 치여 끌려가다 끝내 숨졌다. 오라윳은 몸 어디 긁혔다는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사고 이후의 음주 측정에서 알코올 농도가 규정치를 넘어섰다. 오라윳은 체포된 뒤 술 마신 것, 사람 친 것 다 인정했다고 보도됐다.
사고 직후 50만 바트(한화 1900만 원)를 내고 보석으로 나온 오라윳의 사건은 한 달 뒤인 3월 4일 검찰로 이첩됐다. 그 이후 7차례의 가해자 소환 조사가 실시됐지만 오라윳은 단 한 번도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몸이 아파서’, ‘외국에 있어서’가 주된 불출석 사유였다. 검찰과 경찰은 이를 다 받아주었다.
오라윳이 사고를 낸 후 4년 동안 영국과 일본 등 최소 9개국을 방문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레드불이 후원하는 포뮬러원(F1) 대회를 관람했고, 유람선 여행과 스노보드를 즐겼으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여는 장면도 지인과 친척들의 SNS를 통해 알려졌다.
태국 검찰은 엄정한 수사와 기소 방침을 밝혔으나 8번째 소환을 앞둔 이틀 전인 2017년 4월 25일 오라윳은 전용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홀연히 도주했다. 그 후 태국 경찰은 5월 4일 오라윳이 전용기마저 버리고 싱가포르를 떠났다고 공식 확인했다.
여론 악화로 오라윳은 인터폴 수배 명단에 올랐으나 어느 날 이마저도 슬며시 사라졌다. 인터폴 수배 명단에서 사라진 이유를 태국 그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태국 ‘금수저’들의 교통 사망 사고가 흐지부지된 것은 또 있다. 오라윳 사건 4년 뒤인 2016년 3월 13일(일요일) 아유타야 방파인에서 자네폽 위라폰(37)이라는 호화 수입차 회사의 상속자가 벤츠 차량으로 앞서가던 차량을 들이받아 2명의 대학원생이 화염에 휩싸여 사망했다. 그러나 경찰은 초기 수사 단계에서 너무 느린 일처리로 맹비난 받았고, 가해자는 음주 측정도 거부했다. 잠시 들끓었던 이 사건의 최종 결말도 다른 사건에 묻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른바 ‘하이소’라 불리는 태국 상층부의 이런 행위들이 어디선가 더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저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도 모른다.
#法治主義
오라윳에 대한 대국 검찰의 불기소와 이에 동의한 경찰의 방침은 향후 태국 사법부와 정권에 큰 부담을 줄 것 같다. 야당 의원들은 곧바로 재조사를 하라는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태국 정부는 코로나 방역조치에 필요하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야금야금’ 4차례나 연장해 8월까지 실행하기로 했다. 대학생들과 시민운동가들은 비상조치 폐지, 헌법개정을 외치며 일주일째 거리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군부 집권 이후 시위를 금지하는 비상조치가 이어져 이런 모습을 거의 못 봤는데 시위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총리 및 부총리, 육군참모총장의 사진을 불태우는 모습도 어제오늘 신문에 나왔다. 시위에는 고교생까지 가세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 주도 관계자는 오라윳 불기소를 당장 시위 안건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태국, 특히 방콕은 페이스북 활성화가 ‘세계 1위’의 도시다. 우리나라처럼 청와대 게시판 청원제도는 아직 없지만 SNS를 타면 폭발력이 엄청나다. ‘오라윳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근-현대 각국 헌법에 영향을 미친 것은 1789년의 프랑스 인권선언이다. 인권선언 제1조는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라고 하고 있고, 제6조는 ‘법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법률상으로 평등하다’고 적고 있다. ‘짐이 곧 국가’라던 루이 16세는 결국 평민들에 의해 파리 한복판 단두대에 올랐다. 신분 특권이 없으며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외침이 불과 231년 전의 일이다. 인류의 긴 역사에 비춰보면 아주 가까운 과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평등, 법치는 오늘날 부정할 수 없으며 되돌릴 수도 없는 확고하며 지배적인 가치로 굳어졌다. 한국 사회가 아빠 찬스, 엄마 찬스, 병역기피, 내로남불에 왜 격분하나? ‘공정의 법칙’이 훼손됐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위계에 의한 각종 성폭력과 시대착오적 마초적 행위도 천부 인권에 대한 이해가 깊게 체득되지 못한 까닭이다. 깡통 소리처럼 매일 글과 말로 요란하게 떠드는 어떤 사람들에겐 왜 정이 안 가나? 언행이 일치하지 않고 진정성이 부족하니 그런 것이다.
태국은 타일랜드 4.0 기치를 올리며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 도약하려다 코로나를 맞았다. 경제와 인류 삶의 향상은 공평한 기회의 제공과 공정한 법치를 근간으로 한다. ‘정의’라는 말과도 같다고 보는데 이는 역사로 증명된다. 다른 나라 일이지만 ‘오라윳 사건’의 결론이 주목된다. 발 등에 불 떨어진 경제문제 보다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래 태국의 모습도 여기에 달려 있다. 태국과 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 같다.<By 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