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태국 입국 제한설(說)이 나도는 가운데 태국으로 돌아왔다.
이런저런 말과 추측이 하도 많아 한국 분위기에 이어 태국 입국 과정을 자세히 옮겨봤다.
2020년 3월 8일 오후 1시의 상황이다.
#한국에서의 4박 5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5천 명을 넘어선 가운데 한국에서의 닷새간은 서글픈 일상의 연속이었다.
공연히 누굴 먼저 만나기가 꺼려졌다. 밥 먹자는 사람들에게는 일정이 급해 사양해야 해 미안했다. 오해하지 않았길. 업무를 보기 위해 몇몇 곳을 급히 들렀는데, 얼굴이 모두 마스크로 가려있었다. 누가 누군지 몰랐다. 바이러스가 묻어있을 수 있다는 의사들의 거듭된 방송 출연 정보. 공공시설물, 특히 바이러스가 오래 남아있을 수 있다는 쇠붙이 만지기가 저절로 꺼려졌다. 누군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먼저 누르면 용감하고 대범한 사람으로 느껴지는 마음이란.
일상에서 접촉하는 쇠붙이는 너무 많다. 마트나 공항의 카트, 화장실의 문고리, 식당의 공용 국자나 집게, 헬스클럽 트레드밀의 속도 조절기, 자동차의 문고리, 안전벨트, 은행의 의자, 그 의자 위에 놨던 손가방 지퍼. 주차장의 버튼. 공공기관의 공용 볼펜 자루 끝부분 등등. 곳곳이 쇠붙이다. 하물며 지폐와 동전도 소독한다고 했다. 이런 것 만지다가 습관적으로 마스크 다시 손으로 올려 쓴다. 집게손가락 하나로도 감염된다면 사회생활하며 코로나를 막기란 불가능이 아닌가? 안 만나고, 안 나가고.. '호모 홈피언스의 시대?'.
마스크 부족 사태 속에 대형 인터넷 쇼핑몰의 계란마저도 품절로 표시돼 있었다. 배송 시간도 늦는다고 했다. 만난 사람들의 얼굴은 마스크에 반쯤 묻혔지만 조급하고 날카로운 느낌이다. 최선을 다해 침착하고 열심히 하려는 분도 있었다. 다급할 때 본성이 나온다고 했나?
4월쯤엔 사태의 종식을 원하고 있지만 예상은 만나는 사람마다 제각각 달랐다. 이젠 한국이 잡혀도 일본, 유럽 및 미국으로 크게 확산되는 추세가 걱정. 혹시 몰라 고향의 부모님 뵈러 가는 계획도 애초부터 세우지 않았다. 코로나19는 폐렴과 함께 인간행동과 관계를 급격히 단절시키는 바이러스를 더 빨리, 더 멀리 확산시키고 있다.
#다시 출국
5일간의 긴급한 한국 출장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예정 여정은 1주일이었고 한국에 더 있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런저런 복잡한 심사마저 한데 겹쳐 태국으로의 복귀 시기를 앞당기기로 했다. 전날 뉴스에선 한국인에 대한 입국 제한을 하는 나라가 세계 90여 개국으로 늘었다. 지구의 어느 나라든 무비자 입국이 대부분이라 '코리아 패스포트 파워'란 글을 쓴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태국은 한국인의 입국에 대해 왔다 갔다 했다. 잇단 태국 언론 발표도 제각각 조금씩 차이가 있었고, 태국 정부부처 사람들의 말도 우왕좌왕했다. 페북에도 이런저런 의견이 있었고 상황 캐치 루트가 많아 보이지 않는 어떤 분은 걱정 없을 거란 뉘앙스로 댓글을 달기도 했다.
태국통 아내가 태국 고위 관료를 통해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낮이건 새벽이건 최신 정보를 알려줬다. '장관이 곧 사인할 거래' 등등. 하지만 그것도 확실치는 않은 것 같았다. 태국으로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하면 회사일이 문제다. 결재도 못한다.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는 주변의 조언이 많았다.
항공 일정을 바꾸는데 무리는 없었다. 편수는 확 줄었지만 인천발 오전 방콕행 타이항공이 운행되고 있었다. 인천공항 타이항공 직원은 전날 좌석 여유가 많으니 공항에 와서 바꿔도 틀림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8일 오전 9시 30분 비행기. 공항까지 태워준 분은 '초기에 발원지로부터의 입국을 더 강력하게 막았다면 이런 난리는 없었을 것'이라며 분개해 했다. 난 침묵했다.
발권 카운터 앞. 비즈니스석이라 앞에 한 팀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코노미 라인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긴 줄의 사람들은 부피가 큰 가방을 가진 태국인들. 요즘 한창 이야기가 나오는, 자진 신고하고 귀국하는 태국인 불법 노동자들이 아닐까? 항공사 카운터에 슬며시 물었는데 이들이 누군지는 모른단다. 직전까지의 한국과 태국 보도는 대구 등에서 오는 태국 노동자들은 태국 동부 사타힙 해군기지에 모두 2주간 격리된다는 것이었다. 어느 태국 신문에는 한국인도 시설격리된다는 말이 있었다. 사타힙엔 인적 드문 좋은 해변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태국 노동자들과 그곳으로 함께 묻어갔다간 큰일이다. 더욱이 방콕에 주거가 있는 나는 한국 출장 다닐 때 양말 한 켤레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 온 말은 한국인의 경우 자가격리라고만 들었다. 의무도 아니라는. 어떻게 신고하고 격리 방침을 준수하게 하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탑승권을 발권한 뒤 타이 항공사 직원이 용지 하나를 더 내준다. 태국 입국 시 자가격리에 동의한다는 내용이다. 오늘 아침에 전달받은 내용이라고 했다. 한국이든 태국이든 아무 전화번호와 주소를 쓰고 서명하면 된다고 했다. 그 용지는 다시 가져갔다. 이 서류를 받은 것 외엔 자신도 현지에선 어떻게 되는지는 자세히 모른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가방에 혹시 마스크가 들었냐고 물었다. 전에는 배터리나 휘발성 물질을 체크하더니 마스크부터 캐묻는다. 마스크는 단 한 장이라도 수화물로는 못 보낸다고 헸다. 몇 장이 한계인지는 모르는데 마스크는 가지고 타야 한다고 했다. 내 손가방엔 5개 정도의 마스크가 있었다.
이민국 게이트 앞에선 한국도 태국에서 나올 때처럼 발열 검사를 했다. 머리가 좀 아픈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이었나 보다. 정상이다. 체온계를 확인하던 남자 직원은 열이 있으면 어느 나라로 가든 비행기는 못 탄다고 했다. 늘 긴 줄이 섰던 이민국 검사대엔 사람이 거의 없다. 태국 VIP 패스트랙보다도 훨씬 빠르다. 늘 자동 출입국심사를 했지만 이날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 자동심사는 유리판 위에 손가락 지문을 찍어야 한다.
항공사 라운지도 텅텅 비었다. 외국인 1명, 젊은 커플 하나. 나 포함 총 4명이다. 지난해 말 출장 때는 앉을 자리가 없어 조금 기다렸던 생각이 났다. 일하는 아주머니는 4개 라운지 중 2개를 닫았고 15명의 계약직 직원이 절반씩 나눠 보름씩 무급휴가를 하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전에는 설거지하고 청소하느라 허리를 못 펼 지경으로 바빴다고 한다. 이용객과 이렇게 한가하게 이야기해본 적도 없었지만 힘들어도 사람들이 붐비는 게 낫다고 했다.
터미널 안에서는 열나면 신고해야 한다는 안내와 함께 기본 위생을 알리는 방송이 연거푸 나오고 있다. 화장품, 기념품 가게에도 사람이 거의 없다. 몇몇 매장은 직원들이 이용객 보다 더 많다. 면역에 도움 된다는 홍삼 등 건강식품 홍보 간판만이 유독 눈에 찍힌다. 탑승 게이트로 가다가 약국이 보이길래 종합 감기약 3곽을 1만 2천 원 주고 샀다. 태국 가서 감기 증상 있으면 병원 가지 말고 이것부터 먹어보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