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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추밀원장 쁘렘 별세
 
  태국 추밀원장 쁘렘 별세  
     
   
 

국 근현대사의 ‘키맨(Key Man)’ 쁘렘 띤슈라논 추밀원장이 5월 26일 오전 9시9분 별세했다.

1920년 생. 한국 나이로는 100세, 8월 26일 생일이 지나지 않아 태국 나이로는 98세다.

보통의 한국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나 태국에선 격동의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 정치인이다. 이 분과 필적할 마땅한 인물을 어디에서도 꼽기 어려울 만큼 태국의 거물이며, 핵심 중의 핵심인사다.

밀원은 태국어로는 옹카몬트리라고 하고 영어로는 `Privy Council' 이다. 이곳의 기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국왕과 관련된 일을 하는 곳으로, 추밀원장은 국왕의 능력이 상실되거나 국가원수를 세울 수 없을 때 대신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쁘렘 원장을 비롯해 수라윳 전 총리, 군 최고사령관, 전직 대법원장, 기업가 등 위원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추밀원 위원은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옴부즈맨, 선거위원회, 인권위원회, 헌법재판소, 국가청렴위, 감사원, 영구직 정부관료, 국영기업 등 어떤 직업도 겸직할 수 없다. 한번 추밀원위원이 되면 종신직. 스스로 그만두거나, 국왕이 하지 말라고 할 경우에만 그만둘 뿐이다.

렘 원장은 8년 간의 수상임기를 마친 1998년부터 추밀원 위원이 되어 21년간 추밀원장을 지냈다. 추밀원장은 국왕 임명직이지만 4월 쏭끄란 새해나 생일 때는 선출직인 총리를 비롯한 3군 사령관, 경찰총장 등이 자택을 방문해 일제히 부동자세로 인사하는 장면이 곳곳에 보도된다. 왕실을 제외하곤 아마도 태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일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절대적 존경과 카리스마를 갖췄던 라마 9세 푸미폰 국왕의 권위에서 나온 것임은 물론이다. 실제로 쁘렘 원장은 푸미폰 국왕이 서거하자 2016년 10월 13일부터 그해 12월 1일까지 국왕 ‘섭정’의 역할을 공식 수행하기도 했다. 추밀원과 추밀원장은 태국의 국왕을 연상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쁘렘 원장은 태국의 권위있는 기관의 설문조사에서 가장 정직하고 청렴한 인물에 단골로 오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 아침 5시에 어김없이 일어나는 쁘렘 원장은 5월 26일 새벽 수면 중에 영면했다. 심장마비로 의식이 없자 병원으로 옮겨 소생술을 실시하다 오전 8시 경 사망했고, 태국은 ‘길(吉)’한 시간으로 알려진 오전 9시9분을 공식사망 시각으로 발표했다. 쁘렘 원장의 별세소식은 5월 27일 태국 모든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으며, EU를 비롯한 미국, 중국에서 공식적 애도를 표했다.

국 남부 쏭클라에서 태어난 쁘렘 원장은 1942년 육군 사관학교를 나온 뒤 군인의 길을 걸었다. 국왕의 절대적 신임을 얻은 것은 1981년 태국 육군 영관급장교들의 모임인 `’영턱스'의 쿠데타 모의를 감지하고, 국왕과 왕비를 방콕 인근인 나콘 라차시마로 피신시킨 뒤였다. 정적들로부터 수차례의 암살 위기를 겪었으며, 총리시절인 1985년에도 쿠데타를 진압하는 등 태국 근-현대 정치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서고 부딪치며 세월을 보냈다. 군인으로는 인도차이나 전쟁과 2차 대전에 참전했으며, 58세에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 이후 2년 뒤인 1980년부터 8년간은 총리, 1988년부터 10년간은 추밀원 위원, 1998년부터 사망전까지 20년 이상을 추밀원장으로 지내며 태국 사회 곳곳에 깊숙한 영향을 미쳤다.

왕과 군대라는 막강한 배경을 발판으로 태국 정치의 막후실력자로 존재하면서 2000년 들어서는 탁신 전 총리와 대립각을 세웠다. 탁신 전 총리는 재임시절 쁘렘 원장을 염두에 둔 ‘큰 손이 있다’라는 발언을 했다. 쁘렘 원장은 탁신 전 총리를 몰아낸 2006년 쿠데다 직전 군복을 입고나와 ‘군대는 정부가 아닌 태국 국민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쿠데타 배후설에 시달렸다.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시위대들은 이후 쁘렘 원장의 자택을 찾아 시위를 하기도 했는데, 국왕과 거의 동일시 되는 추밀원장을 상대로 공격하는 것은 당시 태국적 상황에선 감히 상상할 수 없던 매우 놀라운 사건으로 기억된다. ‘정치인’으로서 쁘렘 원장은 단 한번도 직접 선거에 나가지 않았고, 선출직 정치인들이 추대해 지도자가 됐다. 이 때문에 그가 주도한 국왕 중심의 태국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일부에선 '유사민주주의' 또는 '교도민주주의'라고 평가절하 하기도 한다.

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100년 가까이 사는 동안 세계 최장수 국가원수에 이어 그의 아들까지 지근거리에서 모시며 태국 정치제도를 실질 설계한 쁘렘 원장. 그의 별세로 태국은 또다른 국면을 맞을 것인가? 2년반 전 또다른 세상으로 먼저 떠난 푸미폰 국왕이 오랜 세월의 동지를 만나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예외없는, 오, 세월이여! <By 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