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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성장의 뿌리
 
  한국 성장의 뿌리  
     
   
 

피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태국에서는 곧바로 6월 30일 쌀 4만 톤을 제공하였고 이어서 6,326명의 지상병력과 군함 5척, 수송기 3대 등 해군과 공군 병력, 그리고 공군 및 적십자 의무대를 파병해 지원해 주었다. 우리는 지금도 태국의 이런 지원에 감사한다. 그 당시 남한의 국민소득은 100불도 안되는 빈민국이었고 전쟁이 없더라도 외국의 지원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나라였다. 그러나 60여 년이 지난 지금은 GDP 1조 6,400억불이고 수출 5,530억불, 수입 5,200억불로 교역규모는 세계 7위인 나라로 ‘도움을 받던 나라’ 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남한의 환경은 매우 열악하였다. 남한 면적은 99,720 sqkm 로 세계에서 109번 째이고 이는 태국의 영토 크기의 20%에 지나지 않고 농경지 경우 태국은 국토의 40%에 달하지만 남한은 전체 땅의 17%에 불과하다. 여기에 인구는 현재 약 4,900만 명으로 태국의 73% 정도 된다. 좁은 땅에서 자급자족할 먹거리를 생산하기조차 힘들었다. 지리적으로 지하나 지상에 자원이 별로 없었다. 산업 개발에 필요한 원유는 태국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하루 213,000 바렐(bbl) 정도를 생산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한국은 원유 한 방울도 나지 않고 각종 제품 생산에 필요한 고무는 남한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태국은 육로로 쉽게 교역이 가능한 형제 같은 이웃 나라들이 인접해 있지만 남한은 북쪽으로 언제 전쟁을 일으킬지 모를 북한이 있고 나머지 3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톨이처럼 고립된 상태이다. 인접 교역이 없다 보니 대부분 자급자족해야 할 입장이었다. 없으면 못 먹고 굶어야 하고 자원이 없어 필요한 물건을 만들 수도 없었다. 일년 중 농사 지을 수 있는 기간이 4-5개월 밖에 안되며 겨울에는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야채도 없고 과일도 없었다. 외화가 없어 부족한 식량과 생필품을 수입으로 메꿀 수도 없었다. 태국은 쌀 농사를 잘 지어 세계로 수출하고 있지만 남한은 주식인 쌀 생산도 절대 부족하였고 최근에야 농업 기술 개발로 겨우 자급자족할 정도이다. 거기다가 북한의 무력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막대한 국방경비를 지출할 수 밖에 없었는데 2006년 경우 GDP 의 3% 이상을 국방예산으로 지출했어야 했다.


잘 살아보자는 노력과 열정


나라 경제를 살리려면 기간산업을 육성해야 하고 거기에 기본적인 자원이 필요하다. 1년 4계절이라는 특성으로 농산물이나 지상자원이 부족하였고 지리적인 여건으로 지하자원도 경제개발 초기에는 석탄 정도밖에 없었다. 석탄도 바로 고갈되어 전력생산을 위해 원유를 들여와야 했고 고무 등 천연자원도 전량 태국 등에서 수입해야 했다. 그러니 외화가 필요하고 외화를 벌기 위해 수출만이 살길이었다, 그래서 수출주도 경제개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정부 주도로 철강, 전력생산, 중화학 등 기간산업을 육성하여 생산 공장이 돌아가도록 했고 자원이 한정적이다 보니 세계에 수출할 상품을 만들 기술 개발에 전력을 투구하였다.


모든 국민이 잘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 근무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지만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열심히 일했다. 그렇다고 회사가 돈을 잘 벌어 야근수당을 줄 형편도 안되었지만 불만이 없었다. 시간이 아까와 점심식사를 10-20분 안에 해치우고 주어진 목표를 초과달성하기 위해 출퇴근 시간에 관계 없이 스스로 열심히 일하며 사무실에 밤 10시가 되어도 불이 켜져 있었고 공장은 야간에도 주말에도 계속 가동하였다. 이런 노력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에 경제부흥의 기틀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어서 전자산업 (electronic industry)을 육성하고 중장비 (heavy Industry) 산업을 육성하였다. 농업에 필요한 수자원을 개발하고 필요한 비료를 생산하고 건설에 필요한 시멘트와 철근을 생산하였고 중동에 상당량 수출하기도 했다. 정부는 신기술 및 신상품 개발에 필요한 기술 개발을 뒷받침하고 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적극 투자하며 수출 영업에 전력을 다하였다.


저축과 교육이 낳은 결과


여름 한 철 농사지어 1년을 먹고 살아야 하니 절약이 몸에 베었다. 1, 2차 오일 쇼크를 당하면서 환경 변화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절약하고 저축하여 어려울 때 고비를 넘기는 저축이 필요하다는 당연성이 기업과 가정에 파고들었다. 최근 통계를 보면 GDP의 32%를 저축하고 있다. 지금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월급을 받으면 쓰고 남은 걸 저축하는게 아니라 월급 받자마자 쓰기 전에 일정 금액을 저축하고 그 나머지로 생활한다. 저축은 기업 활동에 필요한 자금원으로 활용되었고 금융산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수 차례 외부요인에 의한 금융위기나 경제위기를 무난히 극복할 수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 꼭 얘기하고 싶은 것은 한국인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지금의 한국으로 성장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미래와 가족의 미래를 위하여 자녀교육을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전적으로 자녀교육에 헌신하였다. 적어도 대학교를 나와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하든지 자기 전공을 충분히 살려 사회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주머니 돈을 다 털어서 모자라면 빚을 지더라도 자녀를 대학교에 보내려고 노력하였다.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풍성해지자 세계 시장에서 경쟁적인 기술과 상품을 개발할 수 있었고 기업들의 수준도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3년 전 당시 주태국 미국 대사였던 Eric John 씨는 태국에 부임하기 전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었는데 필자도 같이 panelist로 참석한 방콕에서 열린 모 국제세미나에서 사회자가 태국 내 한류 열풍과 한국 상품의 인기를 언급하면서 한국의 발전 원인이 무엇인지, 태국이 배워야 할 중요한 한 가지만 설명해 달라고 물어보자 잠시 생각하더니 ‘교육’이라고 답하면서 한국의 발전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factor 는 한국인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그 결과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한국의 성장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며 그들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과 여건을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미래를 위해 저축하며 부지런히 공부하고 땀 흘려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The BRIDGES Columnist 박동빈
서강대를 졸업하고 미국 CP Overseas 한국 및 홍콩지사에 근무했다. 현재 무역회사인 POHIT Corp 대표 및 UMASS Co., Ltd 태국 지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한태상공회의소 부회장, OKTA 태국지회 부회장, Korea ASEAN Business Network 태국지역회장을 맡고 있다. 15년 간 태국에 상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태 상공인에게 태국 실물경제 정보를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