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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쇠솥을 기다리며
 
  무쇠솥을 기다리며  
     
   
 

토로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는 19세기 프랑스의 모습이 담겼다.

16년 걸려 완성한 이 소설은 지금도 영화와 뮤지컬로 수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흔히 아는 줄거리는 주인공 장발장(Jeanvaljean)이 가난한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다 5년 징역형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탈옥하다 19년으로 늘어나고, 사회에 나오지만 일거리가 없어 은촛대를 또 훔친다.

소설 ‘레미제라블’은 ‘X맨’의 휴잭맨이 나온 영화도 있지만 1978년엔 원작을 살려 미국 CBS TV용 영화로도 제작됐다.

설에서는 장발장이 훔친 빵의 종류는 일반적인 것인데 1978년의 영화 ‘레미제라블’에서는 ‘깜빠뉴’로 묘사되었다. 배고픈 어린 조카를 보다못한 장발장은 비오는 거리로 뛰쳐나가 돌로 빵집의 창문을 깨고 자신의 머리보다 더 큰 둥그런 빵을 훔쳐 달아난다.

‘깜빠뉴’를 정확히 표기하면 ‘뺑드깜빠뉴(Pain de Campagne)’. ‘깜빠뉴’가 ‘시골’이란 뜻이니 한국어로는 ‘시골빵’이다.

‘깜빠뉴’는 밀가루+물+소금+발효제만을 이용한다. 1.5-5.5kg의 둥근 형태로 여러 날을 숙성하여 만들면 온가족이 1주일도 먹었다는 대형 빵이다. 프랑스 가면 입천장이 닳도록 먹는 길쭉한 막대모양의 바게트와 재료가 같다.

바게트에 밀려 사라질뻔 했는데 1970년대 들어 유럽과 미국으로 인기가 급속히 퍼져나갔다.

1978년의 영화 ‘레미제라블’은 ‘깜빠뉴’의 인기가 한창 오를 무렵에 제작됐다. 그러니 장발장이 훔친 영화 속 빵이 ‘깜빠뉴’로 그려진 이유가 아닐까하는 상상이 든다. 영화 제작진이 빅토르 위고가 소설을 쓰던 당시 흔했던 ‘시골 빵’을 고증해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빠뉴는 프랑스인의 주식이지만 한국에 전해진 건 간식이다. 빵에 흔히 들어가 살찌게 하는 원인이 되는 버터와 설탕이 없다고 해서 ‘건강빵’이라는 이미지까지 덤으로 얻었다. 이제는 무화과, 건포도, 호두 등을 넣어 달콤 삼삼한 맛으로 둔갑시킨 ‘스위트 깜빠뉴’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깜빠뉴의 진수는 바게트처럼 소금 외엔 아무것도 넣지 않은 담백하고 쫄깃한 식감에 있는 것 같다. 누룽지 같은 고소함이 은은해 새우깡도 아닌데 자꾸 손을 당기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만들기도 퍽 쉬운편이다. 뼈 빠지게 늘리고 접고 내리치는 반죽을 할 필요도 없다. 고루 잘 섞기만 하면 된다. 빵을 부풀리는데는 르방이나 천연효모가 원조지만 최소량의 이스트로 10-12시간 실온에 놔둬도 빵빵하게 몸집을 잘 키운다. 시간이 있다면 20시간 이상의 저온발효가 더 좋다고도 한다.

효된 반죽을 작은 바구니에 넣어 동그란 모양을 잡고 깊게 낸 칼자국에 사이에 식용유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250도 이상의 뜨거운 상태로 30-45분간 굽는다. 원래는 1시간 이상 굽는다고 하는데 겉표면이 타기 때문에 적당한 크기의 빵이라면 열 보유력이 높은 무쇠솥을 달궈 넣은 뒤 굽는 방법이 흔히 이용된다.

빵의 제작과정을 추론컨데 좋은 무쇠솥이 있으면 모양도 좋고 굽기도 일정한 일품 깜빠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냄비 위에 오븐트레이를 얹어 굽다가 태국 인터넷 곳곳을 뒤져 묵직해 보여 믿음이 더 가는 무쇠솥 한 개를 마침내 주문했다. 코로나 락다운으로 어디 나가지도 못하니 그 튼실한 놈이 이제나 저제나 오려나 싶어 며칠째 초인종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다.

발장이 그랬듯 산업혁명이 완성되지 않은 시대의 서민은 배를 곪았다. 불과 15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이제 어지간한 나라는 음식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별의 별 맛을 다 내 유혹하고 너무 많이 먹어 ‘다이어트’가 트렌드다.

쌀이 귀해 옛적에 섞어먹던 보리밥이 웰빙식이 됐듯이 깜빠뉴에 섞는 거친 통밀도 이젠 거꾸로 건강재료가 됐다. 맛 좀 더 내보자며 욕심내 호두와 라즈베리까지 섞어 무쇠솥에 ‘깜빠뉴’를 굽는 내모습을 본다면 배고픈 장발장은 뭐라고 할까?

“무슈 장발장, 데졸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