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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의 ‘라스트 솔저’ 태국 노병을 추모하며…
 
  한국전쟁의 ‘라스트 솔저’ 태국 노병을 추모하며…  
     
   
 

태국 한 노병이 별세했다. 
텅랏 유푼 태국 예비역 육군 대령.  불력 2472년, 서기 1929년 생(生) 인 그는 11월   5일 오후 10시45분 방콕의 한 병원에서 89세의 삶을 마감했다. 태국 한국전 참전협회 사무총장을 맡아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봉사했던 모습이 기억되어 갑작스럽고 더 안타깝다.
1950년 6월 25일부터 3년 1개월 동안 한민족끼리 싸우며 200만 명이 넘게 사망하고 1천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어 낸 한국의 6.25 전쟁. 고인은 한국이란 이국 땅에서 벌어진 이 전쟁에 만 스물 두살의 나이로 참전했다.  태국 군인으로는 가장 먼저 한국 땅을 밟은 첫 파병조의 일원이었다.  한국에서 돌아온 첫 파병 태국 군인들이 대부분 별세하거나 생존자의 수가 거의 파악되지 않아 고인은 한국전 참전 첫 파병조의 ‘라스트 솔저’ 중의 한 명으로 기억될 듯 하다.
요즘 태국 젊은이들이 K-POP에 열광하는 인생의 가장 젊고 화려했던 시절에 그는 동북아 작은 나라의 전쟁에 자원해 목숨 바쳐 싸웠다. 굶주리고 폐허된 나라의 처참한 과거를 낱낱이 지켜본 증인이었다. 텅랏 대령은 2년전 태국 거주 한국 청소년들을 위한 역사 통일 캠프에서 한국 전쟁의 참상과 교훈을 육성으로 증언했다.  한국인 처럼 정(情)이 가득한 어른이기도 했다. 아내와 딸 셋에 4명의 손주를 뒀고, 한국인이 집에 찾아오면 유독 반가워했다.  태국 과일을 산더미처럼 내놓고 싸주기도 했다.  
한국은 친구가 아니라 ‘형제’라고 자주 말했다. ‘자유는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말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도 했다. 

*태국 한국 청소년들에게 한국전쟁의 교훈을 들려주고 있는 텅랏 대령(왼쪽에서 3번째)

 

*텅랑 대령(왼쪽에서 4번째)과 가족들

텅랏 대령은 1950년 10월 22일 한국전에 파병됐다.  UN 산하 보병 21연대 전투단 소속으로 81mm 박격포 분대장을 맡았다. 계급은 상병. 부산에서 대구를 거쳐 의정부 평양까지 진격했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면서 의정부 전선에서 폭탄 폭발 등으로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1951년 10월 태국으로 돌아왔으며, 1968년엔 대위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1948년부터 1989넌까지 41년간 태국 육군으로 복무했다.
고인이 된 텅랏 대령은 2년전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함께 참전했던 분들이 해마다 자꾸 돌아가고 계시죠. 옛날 생각이 어제 일처럼 거의 다 난답니다. 

- 6.25 전쟁 때 22세 이셨겠군요? 그 당시 태국 젊은이들은 어떤 게 관심사였습니까?
*옛날엔 놀거리가 별로 없어 운동하고 영화보거나 책 읽거나 하는 게 일이었어요.  

-당시 한국이란 나라를 들어 보신적이 있으신지요?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였어요.  

-참전은 위험한 일이었을 텐데, 어떤 이유로 지원하게 됐나요?
*이웃나라가 공격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젊은혈기에 도움주고 싶었죠. 부모님께서도 지지해 주셨어요.
  
-지금 비행기로 가면 한국은 5시30분 걸립니다. 그 당시는 얼마나 걸렸나요?
*1950년 10월 22일에 헤르타머스크라는 태국 정부에서 준비한 덴마크 상선을 타고 갔어요. 보름이 걸려 1950년 11월 7일 부산항에 도착했죠.
  
-한국에 도착했을 때 어떤 생각이 나시나요?
*날씨가 쌀쌀했어요. 환영팀이 음악을 연주해 준 것 등이 생각납니다.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81mm 박격포 분대장이었어요. 선두의 병사들이 공격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었죠.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기셨다고 들었습니다.
*대구에서 이동하던 중 의정부에서 부대가 탱크 지뢰에 당했어요. 앞서 가던 1번 지프차량은 폭발했고, 차에 타고 있던 6명중 4명의 병사는 즉사했어요. 나는 2번 차량에 타고 있었는데 가까스로 살아남았죠. 우리는 평양까지 진군했어요. 중공군이 밀려와 내려 올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오로지 이 전쟁에서 한국이 이겨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그 생각 때문에 힘든 것도 몰랐어요.
  
-태국으로는 얼마 만에 돌아오셨죠?
* 3일을 못 채운 1년입니다. 어머니가 끄렁떠이 항구에 나와서 안아주며 우시던 것이 기억납니다.
  
-한국에서 만난 한국인은 어땠나요?
*너무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어 전투식량을 나눠주곤 했어요. 그 뒤 40년 뒤에 한국을 다시 가봤는데 상당히 발전했어요. 태국보다 성장해 감격스러웠습니다.  
  
-한국에 전쟁이 나면 또 가실 것 같은 가요?
*(단호하게) 가겠습니다!
 
-한국군은 경례하면서 ‘충성’이나 ‘필승’하고 하는데 태국군 구호는 뭔가요?
*(큰 목소리로 경례를 붙이며) 완타야핫!
남-미-북의 정상회담이 열리며 남북 화해무드가 이어지고 있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도 북한의 위협적 핵(核) 발언에 마음 졸인 날이 많았던 터라 기대가 크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꼰대' 같은 이야기라고 말할지 몰라도 전후세대의 중년들에게 한국전쟁은 생경하지 않다. 아버지 어머니 때의 일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모습은 전쟁의 극복과정을 빠른 속도로 그려가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한 부분 같다.  그러나 이 곳의 등장 인물에는 한국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실천한 텅랏 유푼 대령같은 태국인도 있었다. 이들은 한국과 태국 사이에 가장 아름답고 강한 다리를 놓은 주인공들이며, 오늘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고 있는 영웅들이다.
한국전 참전 태국노병들은 모두 한결같이 ‘아리랑’을 잘 부른다. 전쟁통에도 한국인들은 한(恨)이 담긴 이 노래를 부르며 위안 삼았나 보다.  68년 전의 전쟁에서 전사한 텅랏 대령의 태국 전우는 총 136명이다.  고인이 저 세상에서  먼저 간 옛 전우들을 만나 다시 한번 ‘아리랑’부르며 어깨춤 이라도 출지 모르겠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장례식은 11월 7일 육군 박물관과 UN ESCAP인근의 마쿳사원에서 오후 4시부터 열린다. <by 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