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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 태국 국빈 방문
 
  이명박 대통령 태국 국빈 방문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31년 만에 태국을 공식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11월 9일 방콕 돈무앙 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가장 먼저 촌부리에 위치한 태국군 21연대 내의 6.25전쟁 참전기념비 를 방문해 헌화 한 후 생존해 있는 태국 참전용사들의 손을 일일 이 잡고 감사를 전했다.

이어 방콕 샹그릴라 호텔에 100여명의 재 태국 한인동포들을 초대해 1시간에 걸쳐 간담회를 가졌다. 김형곤 한인회장의 환영사 에 이은 한인 격려사에서 이대통령은 개인적으로 태국 방문에 대 한 특별한 감회를 표시하며 “임기가 끝날 때 까지 안보와 경제 두 분야를 책임지고 잘 인계하겠다”고 밝혔다.

또 오바마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한국이 원조 받는 국가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성장한 것은 교육의 힘이었으며, 부모들의 교육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도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또 “5년 사이에 2번의 경제위기를 맞았다. 위기 속에서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다 올렸다. 한국은 위기 속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진통은 있었지만 국격이 높아졌다. 위대한 나라, 위대한 국민이다”며 동포들의 노고를 치하하기도 했다.

동포 간담회에선 민강식 방콕한국국제학교 이사장, 박동빈 한태상공회의소 부회장, 송원제 변호사 등이 대표질문자로 나서 태국 내 한인 기업들의 상황과 건의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0일에는 태국 정부청사에서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공동 언론발표문을 통해 수교 55 주년을 맞게 되는 내년 한국과 태국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양국 외무장관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에 관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잉락 총리와의 회담에서 태국의 수자원 관리 시스템과 고속철도, 발전사업 등 다양한 인프라사업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으며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체결에 관한 예비적 협의와 공동연구를 추진하는데도 합의했다. 이 밖 에도 서울과 방콕에 각각 문화원을 설립하고 동아시아 정상회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 등을 통해 상호간 긴밀히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한국 이명박 대통령과 태국과의 인연
한국은 1963년 박정희가 제 5대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 이명박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2년 뒤인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운동권 출신으로 입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면접을 보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이명박이 현대건설에 입사한 해인 1965년 어느날. 박정희 대통 령은 현대건설 정주영사장에게 태국의 고속도로 공사에 참여해 볼 것을 제안했다. 당시 한국은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상태 에서 수주 경쟁에 뛰어들어 16개국 29개 업체를 제치고 540만 달러의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태국의 기후는 한국과는 달라 기계들이 열이 나 고장 나 는 일이 많았고 비가 오면 콘크리트를 깔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 이니 인부들의 불만이 많고 일을 하다 그만두는 일이 빈번했다. 공사가 시작된 2년 뒤인 1967년. 당시 현대건설 대리로 승진한 26세의 이명박은 태국으로 발령을 받게 됐다. 이명박은 그 때가 몇월 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날씨가 너무 더웠던 해’라고 말하고 있다. (태국은 언제나 날씨가 덥다!)

이명박이 태국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인부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놀란 현대건설 간부들은 모두 도망갔다. 그러나 이명박은 도망치지 않고 혼자 사무실을 지켰다. 폭도들이 들이닥쳐 ‘죽고 싶지 않으면 금고문을 열라’고 위협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급여는 모두 지급됐으므로 회사는 잘못한 게 없다’ 공금을 절대 줄 수 없다고 버텼다. 이렇게 이명박이 죽음을 무릅쓰고 폭도들 과 대치하고 있을 때 태국 경찰이 도착했고 폭도들은 모두 경찰 에 붙잡혔다.

당시 현대건설의 간부들은 경찰에게 폭도들의 강력한 처벌을 요청하였으나 이명박은 ‘아니다. 내가 잘못한 일이다. 태국사람들은 잘못이 없다’며 선처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경찰들은 현장을 떠나고 사건은 마무리됐다. 이 보고를 받은 정주영 사장은 감탄하였고, 그 뒤로 태국의 현장관리를 대리인 이명박에게 맡기게 되었다.

이명박은 3년 뒤인 1970년 이사로 승진하고 입사 12년 만인 1977년엔 35세의 나이로 사장, 1988년에 회장이 되 었다. 1992년엔 27년간의 현대그룹 생활을 마치고 국회의원이 되 었으며 2002년 서울 시장, 2007년엔 한국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태국은 그가 샐러리 신화를 이뤄가는 첫 무대였던 셈이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9일 한국 대통령이 되어 45년 만에 태국을 공식 방 문한 71세의 이명박 대통령은 태국에 대해 남다른 소감을 곳곳에서 밝혔다.

그는 10일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태국은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많은 곳이다. 20대 시절 직원으로 와서 3년 가까이 있었다. 나보다 더 오래 전에 태국에 온 사람 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팟퐁에 사무실이 있었다. 서울은 불이 침 침했지만 태국은 훨씬 발달했다. 태국은 관광객도 많았고, 아시안게임도 우리보다 먼저 치렀다”고 말했다.

또 “한국전쟁에 태국은 육해공군이 참가하고 가장 늦게 까지 한국에 있었던 나라였다. 태국군을 따라간 전쟁고아도 있었다”며 태국과 한국은 피로 맺은 혈맹의 국가”라고 강조했다. 이번 방문을 수행한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볶음국수인 파타이가 맛있다”고 말하는 등 태국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말 말 동포간담회
“세계 여러나라를 가봤지만 웬만큼 파면 다 나와요. 우리는 파도파도 안 나옵니다. 그만큼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자원이 빈약한 한국이 발전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며)

“태국에서 여러번 초청했지만 올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도 주말에 오는 사람은 반갑지 않은데 인도네시아를 들리다 보니까. 태국에서 배려해줘 토요일임에도 정상회담을 하게 됐습니다.”(주말 정상회담 배경을 설명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외국원수 중 누구와 친하냐는 질문을 받고 내 이름을 댔다고 해요. 나한테 물어보지는 않고… 시골 초등학교에 다닐 때 미국인 선교사가 헌 옷을 가지고 방문한 적이 있어요. 바지를 받으려고 줄을 섰는데 부끄러워 끝내 얻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신세 진 것은 없다고 했지요. 하지만 국가적으로는 미국의 도움을 얻었어요. 6.25 전쟁 때 3만 7천여 명의 미군이 전사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동력이 무엇이냐고 물었어요. ‘교육의 힘’이라고 답했죠. 그랬더니 다시 ‘무엇이 교육의 힘이 있게 했냐’고 또 물었어요.‘부모의 교육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오바마 대통령은 온 세계를 다니며 한국의 교육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태국에 오기전 인도네시아를 들렀는데 싸이가 온다고 해요. 일정이 확정됐다고. 저는 태국에 먼저 올 줄 알았는데. 젊은 사람들 참 대단합니다.”(한류와 젊은 세대의 글로벌 동력이 한국의 국격을 높이고 있다며)